유행처럼 사고 팔리는 생명… 예쁜강아지, 기구한 팔자

입력 2022-02-05 04:02
최근 개 번식장에서 유행하는 품종을 집중 번식시키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018년 재개발지역에 출몰한 푸들 떼와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있는 푸들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첫 번째, 세 번째)과 지난달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의 한 개 번식장에서 발견돼 구조되고 있는 강아지들. 가운데는 포메라니안 품종 강아지. 카라 제공·게티이미지뱅크

불법 동물 번식장이 수차례 문제가 됐지만, 여전히 개 번식장이 성행하고 있다. 더 기괴한 사실은 번식장에도 트렌드가 있어서 명품브랜드 패션쇼처럼 시즌마다 유행하는 품종을 집중 번식시킨다는 점이다.

2020년에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강아지 인기에 힘입어 ‘장모치와와’ 입양 문의가 펫숍에 빗발쳤다. 지난해 8월엔 아이돌 출신 가수의 반려견이 유명해지면서 ‘실버토이푸들’ 수요가 급증했다. 빠르게 바뀌는 인기 품종, 그에 맞춰 전시되는 펫숍의 강아지들 이면에 더럽고 처참한 불법 개 번식장이 있다.

지난달 24일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와 함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개 번식장을 찾았다. 비닐하우스 위에 달린 ‘팬’이 눈에 띄었다. 활동가들은 비닐하우스와 환기 팬이 보이면 번식장이 확실하다고 했다. 비좁은 뜬장에서 수십 마리의 개가 발정제와 자궁수축제를 맞으며 길러지는 동안 배설물 냄새를 빼기 위한 팬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기척이 들리자 출입문 앞에서 포메라니안 두 마리가 매섭게 짖었다. 얼키설키 엉킨 털과 오물이 잔뜩 묻은 외양에, 한눈에 봐도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집 뒤편에선 포메라니안 세 마리가 닭장에 갇힌 채 짖어댔다. 바닥에는 대소변이 가득해 개들이 움직일 때마다 냄새가 진동했다. 가자마자 발견한 5마리의 포메라니안, 이곳은 ‘포메라니안 전문 번식장’이 확실했다. 동행한 활동가는 “요새 번식장은 포메라니안 철”이라고 했다.

카라의 신고를 받고 남양주시에서 공무원이 점검을 나왔지만 번식장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번식장도 개인 소유의 땅이라 사법기관이 아니면 수사 권한이 없고 함부로 들어가면 가택 침입이 된다. 번식장 주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십 번 같은 일을 겪어온 활동가들은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이틀째 되는 날, 주인은 불법 사육장 운영을 인정하고 소유권 포기 각서를 작성했다. 그리곤 밤에 와서 조용히 개들을 데려가라고 했다.

그날 밤, 카라의 활동가들이 개 16마리를 구조했다. 실제 포메라니안 모두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피부병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 젖이 보기 흉할 정도로 늘어진 개도 있고, 구강질환이 심해 이빨이 절반 이상 뽑힌 개도 있었다. 구조된 개들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카라 더봄센터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구조는 그나마 주인의 소유권 포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진 경우다. 만약 학대 혐의를 받는 주인이 소유권 포기를 하지 않을 때는 방법이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동물과 소유주를 긴급 격리할 권한이 있지만 그마저도 3일이 지나면 소유주에게 동물을 돌려줘야 한다.

불법 개 번식장이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왜 사라지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낮은 처벌 수준을 꼽는다. 정부는 2018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반려동물 생산업체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했다. 생산 시설 관리에 필요한 최소인력과 출산 주기 관리, 거리 확보 등 위생적인 환경 조성을 위한 준수사항도 마련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연 1회 이상 정기 점검을 해야 하고 미등록·무허가 영업자에겐 최대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번식장 운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하면 벌금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 제재 효과가 거의 없다. 번식장이 적발되면 주인들은 옆 동네로 이사해 번식장을 운영한다.

전진경 카라 대표는 2일 “과태료도 너무 적고 불법으로 운영해도 특별한 불이익이 없어 아무도 법에 따라 시설을 등록하고 허가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처벌을 강하게 해서 처음부터 불법 번식장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가 사전에 점검해서 불법 번식장을 적발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상시 점검은 물론 수시 점검이 필요하지만 지자체마다 이를 감시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또 불법 시설에 대해 행정조치를 내릴 동안 동물을 보호할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다.

불법 개 번식장에서 일어나는 동물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관리 감독 및 처벌 강화와 더불어 펫숍에서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 번식장에서 길러진 개 중 상당수가 펫숍에서 ‘유기견’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견이란 법률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지자체 보호소에서 입양자를 기다리고 있는 개를 뜻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을 통해 각 지자체가 보호하는 유기 동물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과거엔 유기견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반려 인구가 늘면서 유기견에 대한 인식 또한 많이 달라졌다. 문제는 이를 악용해 번식장에서 길러낸 개까지 유기견이라고 속여 파는 변종 펫숍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인 최경선 박사는 “펫숍에서 판매가 안 된 큰 개들, 기존 고객이 파양한 개들까지 유기견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기견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전형적인 미끼장사”라고 비판했다.

활동가들은 해외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펫숍에서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일은 펫숍에서 개·고양이 판매가 금지돼 있어 동물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은 유기동물 보호소 티어하임(Tierheim)을 찾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도 상업적인 목적으로 동물을 번식하고 사육하는 펫숍에서 반려동물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에선 6개월 미만의 어린 동물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마련됐고 최근 프랑스도 2024년부터 펫숍의 반려동물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동물 생산시설이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에서 반려동물이 펫숍에 팔려가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훨씬 크기 때문에 많은 국가가 판매 금지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펫숍의 반려동물 판매 금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남양주=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