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이주자들

입력 2022-01-27 22:11

너무 멀어 말 막힌 데는 아니게
콘크리트 성곽 에워산 동네도 아니고
한 번 가면 쉬이 돌아올 수 없는 곳이게
막혀 갈 수 없는 게
하늘처럼 높지 않고
수평으로 푸르게 만져질 듯
배 갑판 오르면 건널 듯
더 간절히 막힌 듯
우리는 풀밭 옆 돌집을 빌려
모퉁이만 돌아가면 바다가 나오는
억새밭에 불을 놓아 남새밭을 일궜다
비 온 뒤 뿌린 씨가 물기에 젖어
이끼 같던 채소가 무성히 오르면
지난 일은 옛일처럼 금세 묻어 버릴 듯
피란처럼
귀향처럼
육지를 떠나왔다
사랑했던 이들을 떠나왔다

-김유석 시집 ‘이주 여행자’ 중

제주도를 여행하는 이들, 제주도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반길 만한 시집이다. 시집 한 권 전체가 제주에 대한 시들로 채워졌다. 제주도 이주자이자 여행자인 시인은 이주와 여행이라는 눈으로 제주도를 읽어낸다. 그렇게 볼 때 제주는 “피란처럼/ 귀향처럼” 떠나온 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