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은혜는 고통 중에 더 넘쳐… 우린 오늘 하루 최선 다해 살자”

입력 2022-01-28 03:06
길요나(54) 서울 왕성교회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과천왕성교회를 담임하다가 2012년 왕성교회 제4대 목사에 취임했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던 그의 설교를 듣다 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26일 교회에서 길 목사를 만나 선대의 신앙을 계승해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 목회 스토리를 들어봤다.

길요나 서울 왕성교회 목사가 26일 서울 관악구 예배당에서 “팬데믹 시대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신앙의 가문 배경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서울 동도교회 장로이셨던 할아버지는 청량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다. 생활비를 빼고 뭉칫돈을 헌금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의사로 일하다 목회자가 된 길자연 목사님이다. 아버지도 하나님께 건물과 땅을 수시로 바쳤다. 두 분이 늘 골방에서 기도하시던 기억이 있다. 교회는 나에게 삶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사춘기 때 심하게 방황했다. 요나처럼 신앙적 갈등도 많이 했다. 독특한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길연아’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다.(웃음)”

-어떻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나.

“목회자 자녀로 예배는 빠지지 않았지만, 무늬만 크리스천으로 꽤 오래 살았다. 청년기엔 영화감독과 제작을 꿈꿨다. 소형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는가 하면, 영화제작사 설립에 도움이 될 대학원을 다니는 등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찾아와 주신 주님 은혜가 너무 컸다. 마음을 정리하고 목회 길에 나섰다.”

-집안 가보가 있다고 들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 뒤집어쓰고 기도하셨던 ‘기도 망토’다. 할아버지가 최훈 목사님이 쓰시던 기도 망토를 따라 만드셨는데 소매가 없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늘 그걸 뒤집어쓰고 새벽 제단을 쌓으셨다. 나도 새벽마다 그걸 뒤집어쓰고 기도한다. 50년 된 거라 삭아서 찢어질 정도다. 그때마다 기워가면서 쓰다 보니 누더기가 됐다. 지난 10년간 드라이클리닝을 한 번 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3대째 기도가 묻어 있는 가보인데 두 아들 중 목사가 나온다면 물려줄 계획이다.”

-부친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는 심방과 기도로 늘 늦게 오셨다. 자고 있으면 내 머리와 입에 손을 올리고 ‘이놈 잘되게 해주세요’라며 기도하시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3학년 때 바닷가로 가족 여행 딱 한 번 갔다. 아버지는 주일 새벽까지 밤새 설교를 준비하셨다. 아침 1부 예배 인도로 황급히 나가시면 책상에 가서 펜 뚜껑을 닫아드렸던 기억이 있다. 부전자전일까. 나도 밤새 설교를 준비하다가 주일 4번 설교한다.”

-부친의 목회를 평가한다면.

“목회하면 할수록 아버지가 굉장히 열심히 하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친은 부임 초기 6년 반 동안 교회에서 10시간 이상 기도하며 목숨 걸고 목회했다. 왕성교회는 워낙 성도들의 심성이 좋고 영적 텃밭이 좋다. 아버지가 기도 목회로 다져 놓은 결과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목회에만 전념하는 부친의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상 내가 목회를 하고 보니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하셨지’하며 목회 기준이 생긴다. 어른 목회자로서 존경한다.”

-중저음의 부드럽고 쉬운 설교가 강점이다.

“그림 언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성경 말씀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설교에 중심을 둔다. 그걸 고민하다 보니 문제는 밤을 새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감을 앞두고 진액을 짜내는 소설가, 기자의 고충을 이해한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다.

길요나 목사가 조부와 부친이 사용하던 50년된 기도 망토를 쓰고 기도 목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교인들은 대부분 신림동에 거주하는 서민이다. 그동안 장학금을 지급하고 라면 김치 나눔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해에는 한 성도가 적금 만기가 도래했는데, 기도 중에 도우라는 응답을 받고 그걸 가져왔다. 이 사연을 들은 교인들이 없는 살림에 1억원을 모았다. 그래서 서울 관악구 교구협의회에 소속된 68개 교회의 임차료 등을 지원했다. 강물도 무수한 지류가 있어야 본류가 풍성해진다. 작은 교회가 살아날 수 있도록 지역 내 교회가 도와야 한다. 교회 생태계가 유지돼야 한국교회 미래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코로나처럼 고통 중에, 없는 중에 더 넘쳐나는 것 같다.”

58년 역사의 왕성교회는 길 목사의 부임 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교회는 ‘뜨거운 기도와 예배의 영적 기함교회, 성경적 가치관으로 무장된 인재를 양성하는 교회, 세계 선교를 마무리 짓는 교회’라는 3대 비전을 갖고 있다.

-부친이 목회할 때는 당회원이 140여명이었고 지금은 90명이다.

“당회원이 90명이면 문제가 있더라도 서로 중재가 된다. 당회를 운영하며 스트레스가 많지 않다. ‘문제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운영한다. 장로님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 내용이 있으면 사전에 공지해드린다. 장로님들은 아들 같은 젊은 목사의 실수를 이해하고 용납할 정도의 인격과 성품을 갖고 있다.”

-영성 관리는 어떻게 하나.

“새벽기도 금요철야 때 열심히 부르짖는다. 기도를 많이 하는 아내는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보완해주는 감독과 같다. 영적으로 조금이라도 흐릿해지면 가차 없이 불호령이 떨어진다.(웃음) 그래서 선배 목사님들이 ‘목회의 절반은 사모가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들 코로나가 위기라고 한다.

“관점을 조금만 넓혀 보면 역사적으로 전쟁과 기근, 고난과 역경이 없던 적은 없다. 2000년 교회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환경과 상황이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교회가 성경적 영성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있다. 에스겔서에서 보면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시니 마른 뼈가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오늘날도 교회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회복과 부흥은 임한다.”

-교회가 움츠려 있다.

“코로나19가 몇몇 교회에서 터졌다는 이유로 반기독교 정서로 교회와 교인들이 위축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놓치지 말아야 점이 있다.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을 위로받고 해결책을 제시해 줄 그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해답은 오직 교회만이 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인류와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인 십자가 복음이 있다. 너무 위축되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선명한 복음을 지혜롭게 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복음을 전해보니 어떻던가.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 싫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듣는다. 그게 연약한 인간의 양면성이다. 또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은 이 시대에도 당연히 있다. 코로나 기간에도 태신자 전도를 계속했는데, 그때마다 놀랄 정도로 태신자들이 현장예배에 참석하고 결신까지 했다.”

-영화 시나리오와 설교문 작성의 공통점이 있다면.

“영화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토씨 하나까지 다 적는다. 유머 코드까지 넣어야 한다. 관객의 반응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런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설교문 작성 때도 청중의 반응을 예상하며 준비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설교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면 설교문에 없는 말씀이라도 선포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이 위로를 얻고 삶의 해답을 찾는다. 그때가 제일 보람이 크다. 시나리오를 아무리 열심히 쓴다고 한들 그게 가능할까.”

-목회의 핵심은 무엇인가.

“영적 기본인 말씀과 기도,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교회의 기초이기에 부실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교회를 굳건히 세워나갈 수 없다. 반면에 튼실하면 어떤 좋은 프로그램이나 훈련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말씀과 기도와 예배는 간절함과 뜨거움이라는 두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생동감이 생긴다.”

-코로나 3년 차를 맞이하는 성도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한다면.

“유대 전설에 이런 말이 있다. 다윗이 반지에 ‘평생 잊지 말 문구를 넣어 달라’고 했다. 세공업자가 써넣은 건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고 한다. 코로나를 대하는 우리 마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분명히 있다. 동굴이 아닌 터널 같은 이런 고난의 때에는 너무 많이, 멀리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 이 한 주간을 최선 다해 살아가는 게 지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날을 맞이할 것이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