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이 머리를 맞대 소프트웨어를 정하는 과정을 ‘사전기획’이라고 부른다. 사전기획은 교육기획과 공간기획 두 축으로 이뤄진다. 교육기획은 학교 실정과 교육과정에 해박한 해당 학교의 교사와 외부 교육전문가가, 공간기획은 건축전문가가 맡게 된다. 사전기획에는 통상 6개월이 주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교사끼리 혹은 학교와 학부모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경기도 화성시의 사립 안용중학교는 이를 잘 극복하고 사전기획을 충실히 수행 중인 학교다. 안용중에서 교육기획을 담당한 유주열 교사를 지난 24일 인터뷰했다.
교육기획 유주열 안용중학교 교사
-사업 사전기획가로 참여한 계기는.
“학교가 오랜 학내 분쟁을 끝내고 지난해 5월 말 안정을 찾았다. 교사들이 ‘이제 제대로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린스마트미래학교에 선정됐다. 학교의 미래 비전과 발전 전략을 만들어보자는 선생님들의 기존 구상과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의 취지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새로 구성된 학교 재단과 김영후 교장선생님이 공감하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전담팀을 꾸렸지만 논의가 겉돌았다. 안 되겠다고 판단한 교장선생님이 사전기획을 전담하는 교사를 두기로 하고, 추후 수업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지원자를 받았다. 학교를 바꾸는 매력적인 도전이라 생각해 지원했고 담당자가 됐다.”
-어려운 점은.
“학교로선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자연·지역사회와 호흡하면서(그린·복합화) 스마트한 교실을 학교 구성원 합의를 끌어내 추진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려 있다. 학교시설 개선으로만 접근했던 학교들은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교사들 혹은 학부모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미래 비전과 발전 전략을 교사들이 고민 중이어서 매끄럽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교사마다 자기 영역이 있고 이를 침해하면 반발한다. 관건은 이런 갈등을 중재하는 학교 관리자의 역량과 학교 문화다. 예컨대 이 사업을 위해 어떤 교사의 수업을 줄일 필요가 있다면 흔쾌히 같은 과목 교사들이 ‘내가 더 할게’라고 배려하는 문화다.”
-어떤 학교 공간을 구상하고 있는가.
“이 지역의 화산 줄기와 현충공원을 잇는 지점에 학교가 있다. 이를 활용해 자연과 학교가 만나는 첫 번째 축을 형성한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결되는 또 다른 축이 있다. 학교 전체를 지역주민과 공유하는 건 무리여서 지역사회와 만나는 지점에 산책로를 조성하고 추후 예산을 더 받아 주민과 함께하는 시설을 만들 것이다. 학교는 이 두 축 사이에 위치한다. 운동장은 단순히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이 아니라 ‘교실 밖 교실’이란 개념이다. 큰 운동장 대신 곳곳에 테마 정원을 조성하고 첨단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실내 교실과 연계해 어떤 수업도 수용 가능한 입체적인 교육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사전기획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단순 시설 사업이면 몰라도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공간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이루기에 6개월은 턱없이 부족하다. 요식행위로 흐르지 않으려면 적어도 1년은 필요하다. 행정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우리 학교도 논의가 겉돌 때 돌파구를 마련해준 건 컨설팅이었다. 교육·공간 전문가들이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공간 데이터를 제공했는데 마치 길을 모르고 운전하다 내비게이션을 받은 느낌이었다. 다른 학교들은 공간 구성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우리 학교 공간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다목적 공용 공간 확보를 위해 특정 교과의 특별실을 통합해야 한다면 이 데이터로 설득 가능할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사전기획에 들어가는 학교를 대상으로 충분히 시간을 주고 컨설팅도 내실화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