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VS 빅테크’ 불공정 논란에… 은행권 손 들어주는 당국

입력 2022-01-27 04:05

빅테크와 은행권이 금융산업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진다는 호소가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사실상 은행권의 손을 들어줬다. 동일기능·동일규제 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양측의 경쟁이 ‘넓고 평평한 운동장’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빅테크 업계는 금융당국이 혁신을 인정하지 않고,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26일 주요 금융지주 임원과 빅테크 기업 대표가 참석한 ‘금융플랫폼 간담회’를 개최하고 “기존 금융회사와 테크기업은 ‘확대 균형’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 둘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넓고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빅테크 기업을 향해서는 “일본 등 주요국의 규제 사례를 연구하고 산학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금융중개 관련 규율체계를 금융위와 적극 검토하겠다”고 예고했다. 반면 은행권에는 “금융회사의 부수업무 확대를 검토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하는 등 기존 금융권의 신사업 진출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정 원장은 이어 “금융지주와 빅테크를 막론하고 동일기능·동일규제의 대원칙하에 감독 방향을 설정할 것”이라며 “기업 간 불합리한 규제차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한 영업환경을 만들겠다. 혁신을 이유로 최소한의 금융규제와 감독도 적용받지 않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원장의 이날 발언은 그간 금융권을 필두로 제기돼온 ‘기울어진 운동장론’과 관련해 기성 금융권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간 은행권에서는 빅테크 기업이 기존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채 금융산업에 진출하자 “기울어진 운동장(공정하지 못한 경쟁환경)에서 시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어왔다.

실제 은행은 라이선스를 힘겹게 받아야 계좌 개설 등 수신 사업을 벌일 수 있었지만, 빅테크는 종합지급결제업자 자격을 획득해 수신업에 사실상 무혈입성했다.

또 정부는 신용카드사에 10여년간 결제 수수료를 계속해서 내리도록 강요해왔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업체의 결제수수료에는 손을 댄 적이 없다.

김광석 은행연합회장도 이날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선 후보들이 (공정한 경쟁을 위한) 금융권의 자유로운 경영환경을 보장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에 힘써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만 금융당국이 기성 금융권에 보내는 ‘러브콜’이 되레 금융 혁신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빅테크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나 카카오가 기성 금융권에 비해 더 빠르게 금융산업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들의 서비스가 더 빠르고 편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