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년 뒤 모습 그려보며 사용자 중심서 학교 설계”

입력 2022-01-27 04:05
교육부가 추진 중인 '그린스마트미래학교' 프로젝트를 단순히 '40년 이상 된 학교 건물을 개축 또는 새 단장하는 사업'으로 정의하면 많은 걸 빠뜨린 설명이 된다. 학교 건물과 교육 공간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학교의 미래 비전·전략, 교육과정, 수업 방식 같은 소프트웨어를 새것으로 고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과거 학교시설 개선 사업이 하드웨어를 결정한 뒤 소프트웨어를 끼워 맞추는 작업이었다면,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사업은 소프트웨어를 먼저 결정한 뒤 학교 공간이라는 하드웨어를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혁신적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이 머리를 맞대 소프트웨어를 정하는 과정을 '사전기획'이라고 부른다. 사전기획은 교육기획과 공간기획 두 축으로 이뤄지는데, 교육기획은 학교 실정과 교육과정에 해박한 교사가, 공간기획은 건축전문가가 맡게 된다. 사전기획에는 통상 6개월이 주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교사끼리 혹은 학교와 학부모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경기도 화성시의 사립 안용중학교는 이를 잘 극복하고 사전기획을 거의 완성한 학교다. 안용중에서 공간기획을 맡은 박계정 마실건축사사무소 소장을 지난 24일 인터뷰했다.

공간기획 박계정 마실 건축사사무소 소장

-안용중의 공간기획가로 참여한 계기는.

“교실 바꾸기나 놀이터 개선 사업 등은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세부적으로 공간을 바꾸는 사업보다는 학교 공간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그런 방향성을 담은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가 부분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그린스마트미래학교의 사전기획은 그런 큰 그림을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그려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비록 용역비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학교 공간을 고민해온 건축가로서 매력적이었다.”

-기존 학교시설 사업과 차이점이라면.

“사전기획 단계라고 본다. 사용자중심 설계를 담은 사전기획은 다른 공공부문에선 초기 단계여도 이미 이뤄지고 있었는데 학교 건축에서 도입되는 것이다. 기존 학교 건축은 공간이 지향해야 할 방향 없이 ‘평당 얼마’식으로 예산에 끼워 맞춰 나가는 방식이었다. 학교 공간을 구성할 때 뚜렷한 목표점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학교에서는 사용자와 건축가가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논의하기 어려웠는데 사전기획을 통해 학교에서도 시작돼 의미가 있다. 사전기획 단계로 일이 더디게 진행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학교 구성원의 합의 과정을 통해) 학교가 지향하는 방향을 잃지 않는데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공간기획가의 역할은.

“예산 범위에 맞는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사용자, 즉 교사와 학생의 요구를 공간적인 언어로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산 범위에 맞춰서 이 부분은 장기적으로 조성하고 이 부분은 좀 더 예산을 써서 제대로 조성하자 뭐 이런 조언을 한다.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미래 학교를 설계한다고 할 때 미래의 교육과정이 어떻게 바뀔지가 관건이다.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계속 논의가 진행 중인 사항이어서 교육기획가(교사)와 학교 교사들이 예상하는 5년 혹은 10년 뒤의 모습을 그려보고 이런 부분을 공간에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안용중의 경우 학교 발전이 더딘 편이어서 근본적인 공간구조 변화가 필요한 학교다. 특히 동탄신도시에서 시작해 학교 주변이 급격하게 도시 공간으로 바뀌는 지역이다. 학생이 교실 하나 아니면 학교 공간에만 계속 머무르기보다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공간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안용중은 당초 리모델링과 개축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두고 사전기획을 진행했다. 현재 개축을 추진하는 상태다. 안용중의 경우 개축을 해야 사전기획에서 제기된 학교 구성원의 요구를 제대로 담을 수 있다고 본다.”

-사전기획이 성공하려면.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 문의했을 때 대답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화성시 지역 말고 다른 곳의 학교 사업을 하며 이런 경험을 했다. 예를 들어 예산을 이렇게 구성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교육청은 자율적으로 해도 된다고 하고 교육지원청에서는 곤란하다는 답변이 나온다. 이런 행정적인 부분이 교육부와 교육청,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정립이 안 된 상황으로 보인다. 사업이 초기 단계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 과도기라는 느낌인데 행정적인 부분이 조속히 안정돼야 현장의 혼란도 최소화할 것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