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수도원 공간으로… “성화의 노력을 계속하라”

입력 2022-01-28 03:03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몬세라트 산맥에 위치한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침묵 경청 청빈 나눔 복종 겸손 환대 성실 균형. 수도원의 장점으로 떠올릴 법한 단어들이다. 유명 연예인과 시시한 오락, 소비를 부추기는 물질만능주의의 광풍이 부는 현대 사회에서 경건한 삶을 통해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간절히 찾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수도원에서 배우는 영성 훈련(Monk Habits for Everyday People)’(규장)은 보수적 복음적 신앙의 혈통을 가진 성도들이 수도원에 대해 갖는 오해를 걷어내고 제도가 아닌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돕는 책이다.


저자 데니스 오크홈은 미국 침례교에서 자라나 장로교에서 안수받은 목사이자 신학자다.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세인트앤드류장로교회에서 28년간 목회했다. 제임스타운대 철학 교수와 교목으로 섬기던 1987년 우연히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이후 20년 넘게 수도원 영성을 집에서 훈련하는 일에 관해 저술과 강연을 이어갔다. 개신교 성도들을 위해 수도원의 영적 습관들을 응용하도록 돕는 15가지 제안(그래픽 참조)도 했다.


책은 부드러우면서도 재치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을 때 그 책을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부터 생각해보자고 전한다. 책은 현대의 복음주의 성도들이 구원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바코드를 쾅 찍어주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일단 찍어 주시면 그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냥 서성이면서 기다리다가 나팔소리가 들리고 베드로가 바코드를 판독하는 전자봉으로 그 사람을 스캔해서 확인하면, 그는 진주 문을 통과해서 천국에 걸어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고, 계속해서 성화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어법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마라톤 선수처럼 훈련과 식이요법이 필요하며 여기에 수도원 영성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종교개혁보다 1000년쯤 앞선 6세기 무렵 로마가톨릭의 관성화된 제도에 역시 반대해 생겨난 ‘주님을 섬기기 위한 학교’인 수도원의 가치를 들여다보자는 의미다.

그렇다고 결혼을 포기하는 서약을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건 훈련의 도구로 응용하자는 것이다. 책은 마지막 장을 할애해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 제도를 반대한 이유를 다시 돌아본다. 교회를 분열시킬 우려가 있고, 서약을 거듭해 칭의와 관련한 우려를 낳으며, 진리를 믿으며 얻게 되는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점은 여전히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종교개혁자들도 당대의 제도화되고 관성화된 수도원을 비판한 것이다. 종교개혁가들 역시 수도원이 창설된 초창기 정신과 카리스마를 다시 발견하라고 권고했고,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이런 충고에 지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결론으로 저자는 수도원 공간에 한정되지 말고 내 집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려는 영성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복음주의권을 대표하는 출판사 규장에서 수도원 영성을 다룬 책이 나온 것도 의미가 있다. 규장은 책 소개에서 “세상과 교회는 물(세상)과 배(교회)로 비유되곤 한다”면서 “배는 물에서 기능하고 물 위에 떠 있지만, 배로 물이 들어오면 배는 가라앉는다”고 밝혔다. 교회는 속세를 등지고 외딴곳에 홀로 거하는 것도, 세속화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속의 삶을 뛰어넘어 영성이 흘러넘치는 교회로 가고자 하는 소망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