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신자에게 포도주는 안 주고 떡만 주던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회는 16세기 종교개혁 초기부터 성찬식에서 회중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때 포도주는 큰 잔에 담겼고 이 하나의 잔을 예배에 참석한 온 회중이 돌려가며 마시는 형식을 취했다. 지금도 유럽교회에선 이 방식이 일반적이다.
독일에 있을 때 경험한 이런 성찬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꼭 좋은 기억만 있던 건 아니다. 성찬 시간이 되면 찬송을 부르며 교인들이 모두 나와 줄을 서 떡과 잔을 받는다. 떡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포도주가 담긴 큰 잔이다.
모든 회중이 줄 선 순서대로 이 잔을 돌려가며 마시기 때문에 너무 늦게 줄을 서면 진짜 ‘믿음’ 아니면 못 마실 만한 경우도 간혹 생긴다. 가끔 잔 속에 뭐가 허옇게 떠 있기도 한데 분명 앞사람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분찬의 끝 순서였다. 회중이 떡과 잔을 다 먹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비로소 목사님이 그 잔을 주저함 없이 한입에 말끔히 비워낸다. 난 그걸 보고 ‘목사는 역시 믿음이 좋아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어찌 됐건, 잔 하나로 돌려 마시는 방식은 ‘하나의 잔이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일종의 성찬에 담긴 공동체 신학 때문에 생긴 형식이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미국에서 이런 생각은 변하게 된다. 1869년 뉴욕주 로체스터의 한 의사가 성찬 때 공동 잔이 아닌 개인 잔을 사용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찬 잔처럼 개별 잔 같은 것인데 이런 개별 잔의 등장은 위생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는 파스퇴르(1895년 사망)가 박테리아 연구를 통해 병균의 전염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확립했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미국교회에선 신학적 상징과 의미보다 대중화된 과학 이론과 목회적 편리성이 교회 안에서 더 중요하게 취급됐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성찬 예식과 관련해 미국이 기여한 또 하나의 사건은 성찬 내용물에 관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도 성찬용 포도주 대신 알코올이 없는 포도즙, 또는 포도주스를 사용하자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 역시 미국교회의 영향이다. 정확히 말하면 감리교 목사이자 치과 의사였던 토머스 웰치(1825~1903)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성찬례를 거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는 게 늘 딜레마였다. 그는 치과 치료비 대신 현물로 포도를 받아 가며 포도주를 대신할 성찬용 무알코올 음료를 만들어 직접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의 소망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모든 교회가 성찬식에서 포도주가 아닌 포도주스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후에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격적으로 포도 음료 사업에 뛰어들어 대중적 음료를 만들게 된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웰치스 포도주스’이다. 웬만한 상점에는 다 있는 데다 맛도 좋다. 그렇다고 이걸 마실 때 주님의 피를 마신다며 비장하게 목 안에 넘길 필요는 없다. 몰라도 되는 성찬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예배 형식은 곧 그 교회의 역사와 신학의 총합이다. 성찬 형식도 그렇지만 교회의 모든 예배 형식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시간과 환경이 변하면 예배 형식도 함께 변한다.
지난 2년간 급격한 환경 변화에 사회 전반과 함께 교회도 변하고 있는데 이런 변화에 너무 호들갑 떨 필요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도 안 변해도 마음이 흔들리면 위기이고, 다 변해도 마음이 굳건하면 문제가 아니다. 2022년을 맞는 우리는 지금 위기일까 아닐까. 무엇보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