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포털사이트를 달궜다.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면 2055년에 적립금이 바닥나고, 그해 만 65세가 돼 연금을 수령하게 될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연금학회 회장을 지낸 윤석명(61)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반응은 담담했다. 2055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전망은 예상보다 빠른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저성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차라리 낙관적인 것이고, 실제 기금 소진 시점은 그보다 빠를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텍사스 A&M대학교에서 미국의 연금제와 의료보장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30년 가까이 공적연금 제도를 연구하며 일관되게 연금 재정 악화와 개혁의 시급성을 경고해 왔다. 그에게 지속가능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국민연금 개혁 방안과 대선 후보들의 연금 공약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국민연금 2039년 적자 전환, 2055년 소진’을 내용으로 한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는 2년 전 국회예산정책처 자료가 바탕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예상한 ‘2042년 적자, 2057년 고갈’보다 시간표가 당겨졌다.
“2057년은 합계출산율을 1.3명 이상으로 가정해 계산한 소진 시점이었다. 실제 출산율은 2020년 0.84명이었고 지난해 0.7명대, 올해는 0.7명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2055년 소진된다는 것도 2019년 신인구 추계를 반영한 것으로 현재 상황과 괴리가 있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연금 고갈 시점이 더 빨라질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 상태는 어떤가.
“현재 국민연금 적립금은 920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 금액은 수면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주기로 한 미래 지급액 2500조원이 숨어 있다. 1500조원 넘게 부족하다는 뜻이다. 독일과 스웨덴, 노르웨이는 연금을 낸 만큼 받는 제도로 바꿨지만 우리는 얼마를 주겠다고 약속한 확정 급여 방식이기 때문이다(국민연금은 내는 보험료보다 2배 정도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국민연금 잠재 부채가 하루 4000억원 넘게 늘고 있다.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90년생이 사망할 때쯤인 2088년까지 국민연금 누적적자가 1경7000조원에 달한다.”
-적립금이 바닥나도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연금을 주는 ‘부과 방식’이라는 게 있지 않나. 독일이 그렇게 50년 넘게 버틴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은 그 기간 우리보다 보험료를 많게는 5배, 적게는 2배 이상 부담해 왔다. 미적립 부채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부과 방식’으로 갔을 때 2090년 보험료가 소득의 32%로 올라간다. 공무원연금은 48.4%, 사학연금은 67.3%다. 지금 보험료가 소득의 9%(직장가입자는 회사와 절반씩 부담)다. 그것도 국민이 부담스러워한다고 1%p도 못 올린 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미래 세대에게는 소득의 3분의 1을 보험료로 내라고 하겠다는 것인가.”
-그래도 당장 2055년부터 연금을 못 받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 것 아닌가.
“제게 공연히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 마케팅을 한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그럼 세금을 걷어서 주면 된다고 한다. 국민연금만 문제가 아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두 제도의 누적 국가 부채가 1100조원이 넘는다. 2020년 한 해에만 국가 부채를 100조원 넘게 늘렸다.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던 그리스가 재정 적자의 절반을 연금 적자 메우는 데 썼다. 한국은 경제활동 인구 중 40%가 소득세 한 푼 안 내는 나라인데 전부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건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나.
“우리 국민연금은 전 세계에서 내는 것과 받는 것이 가장 불균형하다. 우리 수준의 연금을 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들은 20%대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는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보험료 3%를 내면 은퇴 전 소득의 70%(소득대체율 70%)를 받게 했다. 보험료는 이후 5년마다 상향조정돼 98년 9%가 됐다. 김대중정부 때 소득대체율을 60%로 낮추고 노무현정부 때 다시 40%로 삭감했다. 당시 보험료도 12.9%로 올릴 계획이었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됐다.”
-역대 정부 중 아무 연금에도 손대지 않은 건 문재인정부가 유일한데.
“현 정부는 국민연금 부채를 더 늘리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보험료를 3~4%p 더 내고 연금을 5~10%p 더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공무원 11만명을 뽑아서 더 악화시켰다. 연금에 있어서는 최악의 정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선후보들의 연금 공약은 어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구체적인 공약 없이 나란히 연금개혁을 논의할 기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적어도 어떻게 개편하겠다는 원칙이나 방향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회적 합의 기구는 회의적이다. 현 정부에도 위원회가 있었지만 허송세월했다.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이름만 빌리는 것에 불과했다.”
-이 후보는 일하는 노인의 연금을 깎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월 35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으면 국민연금이 삭감되는 재직자 노령연금 제도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 공약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 연금에도 세금이 붙기 때문에 이중과세의 문제가 있다. OECD도 폐지를 권고했다. 그런데도 복지부가 이 제도를 유지하는 건 그렇게라도 연금 재정을 절감해 보겠다는 고육지책이다. 표 떨어지는 연금개혁에는 입을 다물고, 표가 되는 삭감 폐지만 공약으로 냈다.”
-윤 후보는 “연금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대통령이 되면 그랜드플랜을 제시하겠다”며 집권 후로 미뤘다.
“비겁하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선심성 청년지원 공약을 보면 청년세대에 그렇게 애틋한데 정작 그들을 제일 고통스럽게 할 연금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 혼자 책임지는 게 부담스럽다면 누가 당선되든 연금을 표에 이용하거나 정치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동선언하면 되지 않겠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공약이 가장 적극적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을 국민연금 기준으로 통합하는 동일연금제를 내놨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연금 통합은 중요한 문제다. 공무원연금을 예로 들면 국민연금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이 달라서 불공정 논란과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은 100년 뒤인 2120년에도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준비금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다. 2015년 공적연금 일원화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 똑같이 바꿨다. 원래 일본 공무원연금은 국가가 세금으로 전부 충당하는 제도였다가 59년 개혁을 통해 지금 우리처럼 국가와 본인이 반반씩 부담하는 제도가 됐다. 한국 공무원연금이 60년에 도입됐으니 사실상 역사가 같은데, 일본은 국민연금과 통합된 반면 한국은 국민연금과 멀어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외국은 어떻게 개혁했나.
“우리 국민연금의 모태인 독일은 2004년 연금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출산율, 기대 여명 증가 속도, 경제성장률 등의 주요 변수에 맞춰 매년 연금을 계산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기대 여명이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연금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변화된 수치를 독일 경제에 대입해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판정 나면 연금을 자동으로 깎는다. 정치가 연금에 개입할 여지가 없고, 연금 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니 걱정이 없다.”
-실행 가능한 국민연금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국민 저항을 고려하면 ‘더 내고 덜 받는’ 것보다 ‘더 내고 지금처럼 받는’ 게 현실적이다. 보험료를 13~14%로 올리고 핀란드가 도입한 기대 여명 계수를 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연금으로 받기로 한 총액은 그대로 지급하되 평균 수명이 늘어나 연금을 받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고려해 매월 받는 액수를 차감하는 방식이다.”
-연금 받는 시점을 늦추는 ‘더 늦게 받는’ 방안을 말하는 학자들도 있던데.
“노르웨이는 연금을 75세부터도 받을 수 있게 연장했고 다른 나라들도 67~69세로 늦추고 있다. 우리는 2033년부터 65세로 높아지지만 중장기적으로 더 늦춰야 한다. 연금 가입 상한 연령도 함께 조정돼야 한다. 국민연금은 법정 의무 납입 연령이 만 59세까지로 묶여 있다. 만 69세, 만 74세까지 연금을 납입할 수 있다면 받는 연금이 늘어난다. 일률적으로 정년 연장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일을 더 하고 싶은 고령 근로자들은 일본처럼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월급을 적게 받고 일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용돈 연금이라고 부를 정도로 노후 보장에 충분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은 불가능한가.
“지금 43% 수준인 소득대체율은 외국과 비교해 낮지 않다. 다만 40년 납입이 기준인데 평균 가입기간이 25년으로 짧기 때문에 실제 소득대체율이 30%가 안 된다. 1970년생의 예상 가입 기간을 추정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는 19.4년, 소득이 제일 높은 10분위는 33.9년이다. 15년 차이가 난다. 취약계층은 가입 기간이 짧아 연금이 적은데, 소득대체율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를 더 올리면 보험료를 내지 못하거나 아예 가입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진짜 공적연금 강화는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게 아니라 취약계층이 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끌어들이고 보험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