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금융권에서 금융지주 회장의 ‘n차 연임’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는 금융지주 회장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도록 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금융권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KB국민·신한금융·하나금융·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는 각 그룹 규정상 만 70세를 회장 임기 상한선으로 두고 있는데 이에 대한 찬반 논쟁도 치열하다.
차기 회장 절차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하나금융이다. 오는 3월 임기를 마치는 김정태 회장은 70세 나이 제한 때문에 차기 회장 인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차기 주자로는 함영주 부회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등이 오르내리지만 변수가 많다. 회장 선출 절차를 앞두고 함 부회장이 채용 비리 관련 재판의 선고 결과를 기다리는 등 안갯속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4일 “함 부회장 선고 이후에 구체적인 회장 후보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지주 회장 임기는 법률적인 리스크만 벗어난다면 사실상 9년 이상 임기를 보장받는 체제라는 지적도 있다. 채용 비리 관여 혐의를 받았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해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오너 리스크’를 벗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위기에 몰렸던 조 회장이 한 차례 더 연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 징계에 불복한 소송에서 지난해 승소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임기가 비교적 넉넉하게 남아 있다. 윤 회장은 2023년 11월까지 모두 9년 임기가 사실상 보장받은 상태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의 나이가 70세에 가까워지면서 70세 상한선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각 금융지주 회장들은 연임 횟수에 제한이 없다. 결국 70세 규정이 풀릴 경우 회장 임기는 사실상 무제한으로 늘어날 수 있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나이 제한을 푸는 데 대한 금융당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견제 장치가 없다 보니 금융지주 회장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구조”라며 “정부가 개입하던 시대가 지났으니 이런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제한 규정까지 개정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 배경에는 사외이사들이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1인 장기 집권이 이뤄지면서 회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광범위해지고 개인 비리뿐 아니라 파벌 형성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반면 금융권에선 회장 임기를 연임 횟수나 나이로 제한할 경우 장기적인 경영 전략 대신 단기 실적에만 치우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반시장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4대금융지주 회장 중에 70세 나이 상한선에 불만이 있는 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