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를 별도의 법으로 제정해 경영책임자 등 개인을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현장 사망사고 감축을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지만 보편적으로 검증된 사례가 없다는 점은 우려의 지점으로 꼽힌다.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개별법 형태로 제정되면서 중대재해로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이 세계 처음”이라고 말했다.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을 일으킨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지 않았을 때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의 중대재해 연구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 사망사고를 낸 법인에 과실치사 등 형사처벌을 인정하는 ‘기업과실치사법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중대재해 처벌을 개별법으로 규정한 세계 최초의 사례다.
이 법은 법인에 대한 처벌만 정해놓고, 개인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중대재해법과 크게 다르다. 법인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조직관리·구성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이 문제가 실무진 과실이나 사업장 관리 소홀로 이어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모두 입증돼야 범죄가 성립된다.
호주의 경우 한국·영국처럼 개별법 형태가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에 기업과실치사 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다만 호주 8개주 가운데 4개주에서만 기업과실치사제도를 일부 적용한다. 중대재해법과 마찬가지로 법인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지만 노동자 사망사고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을 경우로 한정한다. 범죄 성립 조건이 까다로워 실질적인 경영책임자 처벌 사례도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개별법으로 중대재해를 유발한 경영책임자를 처벌토록 제정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는 의견이 많다. 다만 최 연구원은 “중대재해법은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며 “영국이 경영책임자 등 개인 처벌을 법 조항에서 제외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우리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에서 이에 대한 경위가 파악됐는지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기업의 안전관리 예산과 인력, 전담조직이 어느 정도 충족해야 면책이 되는지 최소한의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다”며 “이 법은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민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대재해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보완이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부분들은 다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