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했으나 고공행진 중인 인플레이션 탓에 오히려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 여파로 공급망 충격이 이어지는 등 물가 상승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2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노동부 통계를 인용해 지난달 기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임금 상승률이 -2.4%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민간 부문의 시간당 임금이 전년 동월 대비 4.7% 오르는 등 수십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물가가 7% 상승하면서 이를 상쇄한 것이다.
미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4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선 후 12월까지 이 흐름이 유지됐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3개월 이상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경기 회복과 맞물린 큰 폭의 물가 상승이 미국 근로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린 주요 원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현상이 백신 보급 이후 폭증한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6월 5%대, 10월 6%대를 돌파한 뒤 12월에는 7% 수준까지 치솟았다. 휘발유 가격은 전년 대비 50% 급증했고, 식료품 가격은 13%가량 올랐다.
이에 더해 오미크론 변이의 급속한 확산에 따른 공급망 타격은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공급업체 직원들의 코로나19 무더기 감염에 따른 일손 부족으로 1월 둘째주 미국 소매점들의 식품 재고율은 86%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은 물론이고 델타 변이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보다도 악화됐다. 스포츠음료와 냉동 과자 등 일부 품목은 재고율이 60~70%로 추락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피글리 위글리’는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의 물류 담당 직원 3분의 1이 병가를 낸 상태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 세계 공급망 위기가 소비재 가격을 더 밀어 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에 기업이 제품 가격을 올리고 노동자는 임금 상승을 요구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악순환’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은 올해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평균 3.9%의 임금 인상을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디드 고용연구소의 경제학자 닉 벙커는 임금 상승 관련 인플레이션 추세에 대해 “올해 임금 인상률이 얼마나 둔화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