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1호만은 피하자” 공사 멈춘 건설현장… 무인화도 가속

입력 2022-01-25 04:04 수정 2022-01-25 09:04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사흘 앞둔 24일 서울 도심의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안전모·안전화를 착용하고 작업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경영책임자가 안전수칙이나 작업계획서를 관행적으로 지키지 않거나, 종사자 의견을 방치해 사고로 이어지면 엄중 처벌 대상이 된다. 이한결 기자

현대건설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는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모든 사업장에서 공사를 멈추기로 했다. 설 연휴가 껴있어 현장에 충분한 안전관리 인력을 배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취한 조치다. GS건설,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등의 다른 건설사도 연휴 기간에 공사를 중단키로 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첫 사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자리한다. 산업계 관계자는 “현장 상황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고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 일단 멈추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일단 ‘1호’가 되는 걸 피하자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고 24일 말했다.

건설사들이 공사 중단이라는 카드까지 들고나온 계기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함에 있다. 해석이 명확하지 않은 조항이 많아 ‘완성되지 않은 법’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기업들은 나름의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철강·석유화학·조선 기업들은 안전 관련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에 2개 팀으로 구성됐던 기존의 안전환경실을 7개 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부서 이름도 안전보건실로 바꿨다. 포스코건설은 안전보건센터 소속 부서를 2개에서 5개로 늘리고, 담당 임원을 실장급에서 본부장급으로 격상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현장 안전 전담조직 출범을 준비 중이다.

역할과 권한을 대폭 강화한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세우는 기업도 늘고 있다. GS칼텍스는 최근 단행한 인사에서 사장급 인사를 CSO로 임명했다. 포스코는 상무보급으로 승진한 임원의 약 40%를 현장 출신으로 채웠다. 호반건설도 CSO 직책을 신설해 부사장급 인사를 선임했다.

여기에다 기업들의 ‘자동화·무인화’ 추세가 빨라지고 있다.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 산업용 로봇 등을 투입하는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나 무인화를 추진하던 흐름과 달라졌다. 세아그룹은 세아베스틸, 세아창원특수강 등 계열사 생산현장에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안전관리 플랫폼을 적용하기 위해 시험을 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현장 작업자의 안전 위반행동을 감지한다. 위험 구역에 진입하면 착용한 스마트 기기를 통해 회피 알람을 보내고, 관련 부서에 실시간 긴급 정보를 전달한다.

GS건설은 4족 보행로봇 ‘스폿’을 건설현장에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건설은 다관절 산업용 로봇을 시범적으로 현장에 투입했다. 삼정KPMG는 “로봇·드론 등을 활용하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기업들은 협력업체 관리에 팔을 걷어붙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에 사외협력단 32개사 관계자를 모아 중대재해처벌법 강좌를 열었다. 포스코는 협력업체를 직접 찾아가 안전보건 관련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협력사에 대한 안전기준도 까다로워지면서, 오랫동안 협업 관계에 있었던 협력업체와 계약 해지를 고민하는 회사도 많다”고 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