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이름뿐인 대중(퍼블릭)골프장에 불만이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골프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이용료를 10만원 가까이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가는 대중골프장들이 코로나19 초반 20만원 안팎에서 지난해 30만원 안팎으로 그린피를 10만원 정도 인상했다”며 “이용자 수가 급증하면서 관리 상태는 더 나빠졌는데 가격만 오르고 예약도 힘들어져 불만”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과 경기도는 물론이고 충청권까지 18홀 기준 1인당 그린피를 주말 기준 30만원대 중반까지 받는 대중골프장이 많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부분 10만원대 중반 수준이었다.
경기도 북부 B골프장이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2018년 주말 18홀 기준 1인당 그린피가 시간대별로 13만~20만원이었다. 주중에는 10만원 이하에 이용할 수도 있었다. 현재 이 골프장의 18홀 그린피는 주중 28만원, 주말 35만원이다. 캐디피도 2만원 정도 올렸다. “대중골프장으로서 세제 혜택까지 받는데 폭리를 취한다”는 원성이 높다.
국내 골프장 1개소 당 연간 내장객 수는 2019년 기준 평균 8.44만명으로 미국(3.08만명) 일본(3.86만명)의 2~2.5배다. 반면 국내 골프장 수는 500여개로 미국(1만4000여개) 일본(2200여개)보다 훨씬 적다.
일부 대중골프장은 코로나19로 수요가 급증하자 회원제 골프장 수준으로 이용료를 올렸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중골프장 354개와 회원제 골프장 158개의 평균 이용 요금은 차이가 거의 없었다. 주말에 회원제보다 비싼 이용료를 받는 대중골프장도 있었다. 대중골프장은 회원 모집을 할 수 없지만, 숙소와 골프장 회원권을 묶어 팔며 ‘유사 회원제’로 편법 운영한 곳도 적발됐다.
정부가 골프 호황 속 폭리를 취해 ‘무늬만 퍼블릭’이란 원성을 받아 온 대중골프장 체질 개선에 나선다. 기존 대중골프장을 비회원제와 대중형으로 세분해 가성비 높은 대중형 골프장에 세제 혜택을 집중할 방침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일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 안건으로 ‘골프장 이용 합리화 및 골프산업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서울 송파구 스포츠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제2의 골프 대중화 선언식’을 개최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선언식에서 “과도한 이용료 인상으로 이용자 불만이 커지면서 코로나19 이후 골프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며 “모두가 상생하고 행복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정책 방안을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방안의 초점은 ‘골프장 이용가격 안정화’와 ‘대중친화적 골프장 확충’에 맞춰져 있다. 현행 ‘회원제/대중’ 이분 체제를 ‘회원제/비회원제/대중형’ 삼분 체제로 개편하고 적정 요건을 충족해야만 대중형 골프장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이용료(그린피, 카트·캐디피)와 캐디 및 카트 선택 가능 여부, 부대서비스(식음료) 가격 등을 중앙과 각 시·도의 심사위원회(가칭)가 복합적으로 평가해 분류한다.
고가의 이용료와 고급 시설을 고수하는 대중골프장은 비회원제 골프장으로 분류돼 세제 혜택이 축소된다. 대중골프장은 현재 개별소비세(2만1120원) 면제, 재산세(0.2~0.4%, 회원제 4%), 취득세(4%, 회원제 12%) 인하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유병채 문체부 체육국장은 “지금은 대중골프장 개소세가 일괄 면제되지만 분류 후 비회원제는 일부 개소세 등을 부과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골프산업 규모는 연평균 4.7%의 가파른 성장세 속에 2019년 기준 16조원을 기록, 스포츠산업(80조원) 중 단일 종목으로선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골프 인구도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접근성 향상 등으로 MZ세대와 여성 중심으로 급증했다. 2021년 기준 474만명으로 5년 전인 2017년(306만명)보다 55% 늘었다.
문체부는 캐디와 카트 사용 의무화 등 소비자 선택권 제약과 고비용 구조가 골프 대중화의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대중형으로 지정된 골프장에는 세제 합리화와 체육기금 융자 우대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며 “이를 통해 이용자가 서비스 선택권을 갖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국 골프장을 대상으로 이용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 업체에 대해선 직권 조사를 거쳐 시정 조치할 계획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5개소에 설치·운영하는 공공형 ‘에콜리안’ 골프장처럼 주말 18홀 기준 10만원 이하에 이용 가능한 공공형 골프장도 쓰레기 매립장 등 유휴 부지를 활용해 확충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