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똑소리 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지만, 엄마는 성질 하나가 문제라고 한숨을 쉬셨다. 초등학생 때, 아이들이 ‘명태’라는 별명을 자꾸 불러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느 날, 하교 길에 4학년 오빠가 뒤따라오며 ‘야. 명태.’ 하는 순간, 돌아서 힘껏 따귀를 때리고 배를 걷어찼다. 후환이 두려워 큰 개를 끌고 가 위협을 하자 오빠는 나를 피해 다녔다. 또 언젠가 다섯 살 많은 큰 언니가 심하게 심부름을 시켜 말싸움을 하다가 도마 위의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기겁을 한 언니는 비명을 지르며 추운 겨울날 맨발로 뛰어나갔고 나는 바로 현관문을 잠갔다. 결국 다시는 심부름 안 시킨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달랐다.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하고, 혼자 일을 잘해도 소용없었다. 우리 팀엔 고집 세기로 유명한 부장님과 차장님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다 모인 정말 막강한 팀이었다. 어느 날 34살 노총각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나이가 많고 자격증이 있어서인지 좀 도와주려고 해도 나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영 거슬렸다. 그러다가 이 분이 세무 관련 중요한 일처리를 놓쳐 큰 손해가 발생할 처지가 되어 부장님께 자존심이 뭉개질 정도로 크게 혼났다. 너무 절박하여 내게 도움을 청했지만 선약이 있어 안 된다며 그냥 퇴근했다. 다음 날, 차장님이 얼굴이 새까맣게 굳어 앉아 있는 그분을 좀 도와주라고 했지만 안 되겠다고 했다. 부장님도 도와주라고 했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모시러 오기를 기다렸다. 결국 신입사원이 90도로 인사하며 ‘선배님! 제 자리로 가시지요.’ 하기에 해결해 주었다. 그런 며칠 후, 이 분이 복도에서 나를 보더니 ‘선배님! 악마 같아요.’하고 다른 곳에 취직해 떠나버렸다. 자다가도 그 말이 생각나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삶에 무엇이 문제인가?’ 답이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구역예배를 위해 목사님과 교회 분들이 집에 오셨다. ‘이스라엘이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다 자기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목사님의 사사기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꼭 그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따라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할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셨다.
마침 수련회가 시작되어 휴가를 내고 참석했는데 목사님이 누가복음 23장의 우편 강도 말씀을 하셨다. ‘강도는 부활의 주를 믿었고 모든 것을 맡겼다.’는 말씀을 하실 때 감사하게도 죽음 직전에 예수님을 알아본 강도처럼 성령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선명히 비춰주셨다. 부활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되니 퍼즐이 맞춰지듯 말씀들이 한 순간에 정리됐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멋대로 살았던 삶,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 이것이 바로 내가 회개해야 할 죄였다. 문득, ‘선배님은 악마같다.’던 신입사원의 말이 생각나며 내 모습이 정확히 비춰지는데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는 고백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족, 학교,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힘들게 했던 일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랑 앞에 철옹성 같던 마음이 무너지며 모든 통치권을 넘기고 주님을 맞아들였다.
내가 힘들게 했던 분들에게 일일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고, 평소 못마땅하던 연세 많은 분께 커피를 들고 다가가 컴퓨터 업무를 도와드리며 복음을 전했다. 그 후 업무량이 많고, 분위기도 좋지 않은 열악한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팀장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 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철저히 복종했다. 어느 겨울밤 그 팀장님이 거리에서 청년들에게 크게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을 목격하고, 급히 경찰에 도움을 청해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그분 추천으로 모범 직원 상도 받았다.
세상 풍속을 좇지 않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주님만을 위해 달리겠다고 다짐하며 직장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늦은 나이에 결혼도 했다. 아이를 기르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꼈지만, 아이가 밤만 되면 몇 달 간 계속 자지러지듯 울어 너무 치쳤다. 그런 어느 날, 자녀를 통해 부모를 깨운다는 어느 성도분의 간증이 생각 나 바로 엎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뜨거웠던 신앙은 결혼과 육아로 먼지처럼 사라지고 현실에만 급급했다. 통곡을 하며 회개한 후,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결단을 했다. 감사하게도 지금 6살인 아이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가정은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로 풍성해졌다. 날마다 주인 되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의 가정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안명옥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