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리그2 시민구단 FC 안양은 높이 날아올랐다. 창단 이래 가장 높은 순위였다. 하나같이 만만찮은 상대를 연이어 격파하며 정규리그 2위의 성적을 거뒀지만, 순탄할 줄 알았던 승격 첫 고비에서 무너졌다. 모든 게 꿈이었던 듯 허망한 결말이었다.
대신 다음 시즌 목표는 더 높아졌다. 이적시장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알짜배기 선수들을 끌어왔다. 마지막 순간 모자랐던 한 발짝을 이번 시즌에 마저 내딛겠다는 각오다. 승격을 목표로 경남 창원에서 전지훈련 중인 안양 이우형(55) 감독과 주장 백동규(30)를 18일 숙소에서 만났다.
“팀으로선 성공한 시즌이지만, 감독으로서 저 자신만 놓고 보면 실패한 시즌이죠.” 이 감독은 지난해 대전 하나시티즌에 패한 K리그2 플레이오프(PO)를 떠올리며 씁쓸히 웃었다. “리그에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지면 후유증이 사흘 정도 가는데, 그 경기는 보름 정도 가더라고요.”
시즌 시작 전 안양이 승격 기회를 잡을 거로 생각한 이는 적었다. 직전 시즌 리그 6승에 그친 최하위권 팀이었던 데다 2부엔 쟁쟁한 팀이 예년보다 많았다. 감독이 막 바뀐 터라 당장의 성적보다 팀 재건이 우선일 거란 예상도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안양은 이미 강했다. 우승팀 김천을 제외하면 공수 균형이 가장 잘 잡힌 팀이었다.
시즌 내내 강력했기에 마지막은 더 아쉬웠다. 리그 2위 안양은 PO에서 대전 하나시티즌에 비기기만 해도 1부 11위 팀과 맞붙어 승격할 수 있는 승강 PO에 진출할 수 있었다. 전반 13분 코스타리카 대표팀 출신 공격수 조나탄이 선제골을 넣을 때만 해도 진출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후반 거짓말처럼 역전당하며 1대 3으로 패했다.
백동규는 “차라리 가망이 없었다면 몰라도 리그 2위를 하고도 눈앞에서 놓친 거라 아쉬움이 더 컸다”며 “후배들을 다독이고 정신도 다잡았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화도 난다”고 했다. 이 감독은 “적어도 승강 PO까진 갔어야 했다. 너무나 필요했기에 아쉽다”고 했다.
안양은 이번 겨울 K리그2에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다. 주전 미드필더 맹성웅의 이적을 예상했기에 시즌 종료 전부터 주시하던 황기욱과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는 성남 FC 수비수 이창용을 채워 넣었다. 런던올림픽의 주역인 윙어 백성동도 데려와 공격을 보강했다. 영입이 확정된 브라질 플레이메이커 안드리구는 다음 달 3일 자가격리 종료 뒤 곧바로 남해 전지훈련에 합류한다.
지난 시즌 덕에 올해는 다른 팀의 견제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대책은 공격축구다. 이 감독은 “올해는 전체적 중심을 약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좋은 성과를 냈지만 시즌 말미에는 승점 관리를 위해 무게중심을 다소 수비로 옮겼다”면서 “올해는 수비 라인을 올려서 공격숫자에서부터 우위를 점하며 상대를 가둬놓고 강하게 몰아붙이는 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이번 시즌은 안양에 중요하다. 숙원이던 전용구장 건립이 코앞에 다가와서다. 경기도는 지난 14일 안양 동안구 경기장 부지에 설정된 개발제한구역 해제총량 지원결정을 내렸다. 사업이 더 탄력을 받기 위해선 좋은 성적이 필수다. 백동규는 시민구단 대구 FC의 예를 들며 “시 예산을 확보하려면 성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올해가 승격의 적기’라고 말했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는 “지난해 시작부터 승격이 목표라고 선수단에 얘기했지만 사실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저나 선수단에 있었다. 하지만 직접 시즌을 치러보니 충분히 강하다고 다들 느꼈다”며 “자신감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훈련이나 평소 태도가 다르다. 지난 시즌 얻은 서로 간 믿음이 쌓여있다”고 덧붙였다.
1966년 2월생인 이 감독은 현시점 1·2부 감독을 통틀어 조민국 안산 그리너스 감독과 안익수 FC서울 감독 다음의 고령자다. 그에게 안양의 승격은 감독으로서 도전목표이자 구단을 향한 최소한의 소임이다. 이 감독은 “안양을 1부에 올려놓고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팀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1부에서도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고 물러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백동규에게 주장을 맡겼다. 백동규는 선수 간 기강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다. 지난해보다 더 어려진 선수단을 이끌기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안양에서 프로 데뷔를 한 만큼 팀을 향한 애착도 크다. 백동규는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멘토 역할을 해준 대표팀 출신 선배 조용형에게 조언을 구했다. 잔소리를 자주 하기보다 한마디에 무게감을 실으라는 조언이 돌아왔다.
백동규는 팬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들어온 선수 면면을 보면 팬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다”며 “초반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힘 있는 선수가 모였기에 언제든 시너지가 폭발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고 했다. 이 감독도 “선수들이 경기 중 응원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어 한 발짝 더 뛴다는 얘길 많이 한다”며 “전처럼 열정적인 육성 응원을 들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창원=글·사진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