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곽상도 전 의원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거액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 내용이 19일 일반에 공개됐다. 김씨가 동업자이자 투자자인 천화동인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와 2019년부터 이듬해까지 나눈 대화를 보면 로비와 금품 제공으로 얽혀있다는 ‘50억 클럽’이 실제 존재했을 것이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병채 아버지(곽 전 의원)는 돈 달라고 그래. 병채를 통해서”라고 했다. 병채씨에게 “아버지가 무엇을 달라느냐”고 묻자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라고 답했다는 대목도 있다. 금액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주면 이상하니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라고 답한 내용도 있다. 곽 전 의원이 김씨에게 사업상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아들을 통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발언들이다.
녹취록까지 확보하고도 검찰의 ‘50억 클럽’ 수사가 왜 이리 지지부진한 건지 납득할 수 없다. 곽 전 의원 50억원 수수설이 공론화된 게 지난해 9월이었고 검찰이 대규모 전담수사팀을 꾸렸는데도 로비 의혹 수사는 겉돌았다. 지난해 말 곽 전 의원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다. 부실 수사로 망신을 자초했다.
녹취록에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 권순일 전 대법관 등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다른 인사들의 명단과 금액 배분 계획도 담겨 있다. 김씨는 이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50억원씩 챙겨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사건이 불거지기 한참 전 내부자들이 나눈 대화인 만큼 실체적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검찰은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곽 전 의원의 혐의에 대한 증거를 보강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박 전 특검과 권 전 대법관 등을 몇 차례 소환 조사하고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
수사 중복을 피하기 위해 성남시의회 쪽을 전담해 온 경찰은 개발을 돕는 대가로 화천대유 측으로부터 4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로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을 구속했다. 검찰은 검사만도 25명이나 되는 수사팀을 꾸려 100일 넘게 수사했는데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러니 로비 의혹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수사를 이대로 끝낸다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찍힌 ‘별장 성접대 동영상’을 확보하고도 눈 감았던 과거 검찰과 뭐가 다르겠나.
[사설] 검찰, 녹취록으로 드러난 대장동 50억 클럽 진상 뭉갤 건가
입력 2022-01-20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