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1일 산하기관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코심) 대표로 최정숙 성악가를 임명한 이후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다. 오케스트라 운영과 관련해 최정숙 신임 코심 대표의 경험과 전문성을 찾을 수 없는 대신 국회의원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지역구 행사에 출연할 정도의 개인적 친분만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 신임 대표의 유일한 예술행정 경력인 지역문화진흥원 이사도 지난해 11월 선임된 것인데, 이마저 문체부의 ‘낙하산’이었다는 의혹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문체부 산하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임명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황 장관의 부인과 사제 관계인 김삼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무용계 관계자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연간 예산만 200억원 이상을 들여 전통예술 활성화 사업을 펼치는 곳이다. 비록 이사장직이 비상근이지만 결재권과 인사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업무가 매우 많다. 이 때문에 이사장직을 상근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많은데, 굳이 학교 업무도 만만치 않은 한예종 무용원장을 임명한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낙하산 인사’가 가능한 것은 문체부 장관이 대부분의 국립 예술단체와 산하기관 임원 임면권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정관에 문체부 장관이 임면권자라고만 돼 있고 이들 단체장(기관장)의 자격기준 및 임명절차에 대한 내용이 없다. 국립 예술단체장 인사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원인이다.
같은 국립 예술단체면서 국립극장 전속 단체와 재단법인 독립 단체가 다르게 예술감독을 뽑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국립극장 전속인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3개 단체 예술감독은 공모를 통해 선정하되 국립극장장이 위촉한 5~7인의 심사위원회가 최종후보 2명을 선발하면 문체부 장관이 최종 결정한다. 공모 때 예술감독의 자격은 전문임기제 가급 공무원(2급)에 해당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재단법인으로 독립된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합창단 단장과 사실상 국립 예술단체인 코심의 대표이사는 문체부에서 공모 없이 바로 임명한다. 자격요건도 없다. 문체부 공연전통공연예술과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추천받아 최종후보 2명을 선정한 뒤 장관이 최종 결정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을 전혀 알 수 없다. 실례로 2010년 10월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김광보 연출가를 임명할 당시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7월부터 연극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인사자문단(총 12명)을 구성했다. 이후 자문위원별 1:1 개별 심층면담을 통해 후보자를 선발하고, 후보자들의 예술성과 행정·소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적으로 김광보씨를 임명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정숙 신임 코심 대표의 선정 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것과 정반대다.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도 2000년 재단법인화된 직후엔 공모를 통해 예술감독을 선발했다. ‘문화예술계 단체장 물갈이’ 논란을 일으켰던 유인촌 장관 때인 2008년부터 공모가 사라졌다. 공모제에선 역량 있는 인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천제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문체부가 현장 전문가들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점차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는 사라지고 주먹구구식으로 은밀하게 인선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퇴행적인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문체부가 임면권을 독점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 예술단체의 경우 당장 예술감독 선정 방식과 자격 요건을 정관에 넣음으로써 비전문가의 낙하산 인사를 막자는 의견도 나온다. 예술지원사업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심의위원과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듯 예술감독 선정 관련 추천위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해외에선 국립 예술기관의 수장이나 예술감독은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다. 이사회가 안팎에서 추천받은 후보들을 상대로 인터뷰 등 심사를 거쳐 선임한다. 한국에서도 이게 기능하려면 예술기관 이사의 낙하산 인사부터 막아야 한다. 국립 예술단체의 국장이나 예술기관의 사무국장 등에 문체부 공무원을 내려보내는 일도 멈춰야 한다.
국립 예술단체 관계자는 “문체부가 임원 임면권을 독점하고 이사회 이사 선임에도 관여하는 구조에서 국립 예술단체가 어떻게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며 “예술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분노하고 있지만, 이처럼 교묘한 화이트리스트의 폐해도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