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선지자가 있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라고 항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벨론 포로로 살던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 만에 고국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 주전 537년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4만 9897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다시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뭔가 큰일과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성전을 세우면 그 땅에 자신들이 소망하던 메시아의 왕국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지은 후에도 그들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에도 힘들었고,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의 괴롭힘과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은 그들의 희망과 기대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사라졌고, 믿음이 약해지니 그들의 마음에는 낙심과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까지 생겼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까지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에서는 미워하시고 동생인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장자의 권한을 편법으로 취득하여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어 이 일이 알려질까봐 두려워 도망쳤습니다. 두 아내 중 한 아내만 아껴서 다른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아들 중 요셉을 늦둥이라는 이유로 편애해 다른 아들들이 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천사를 만나 축복을 줄 때까진 절대 놓지 않겠다고 떼를 썼고, 씨름꾼은 “너는 하나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야곱과 씨름한 상대는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그 후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었다’는 뜻인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야곱이 누구입니까.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과 겨룹니다.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사랑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것이 2절의 ‘사랑하였노라’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였노라는 미완료형 시제를 사용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쏟아부으셨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잘 담고 있는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믿지 못할 때 믿음과 삶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힘든 고난 속에서 늘 고백했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배범식 목사(서울 평강교회)
◇서울 청계천로에 있는 평강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이다. 1975년 4층 옥탑방에서 설립된 평강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고 복음을 위해 선교와 전도에 힘쓰고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