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가 재난에 대비한 재난관리기금과 재해구호기금을 코로나19 위기에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행정안전부가 기금 사용 용도를 확대하고 지출을 독려했는데도 지출률이 0%인 지방자치단체도 있었다. 지자체가 관성적으로 기금을 쌓아두기만 할 뿐 코로나 위기관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17일 지자체별 기금 지출률을 분석한 결과 재난관리기금 예산 현액(현재 쓸 수 있는 금액) 중 10%도 쓰지 않은 지자체가 28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경북 문경시는 지난해 쌓인 재난관리기금 20억1700만원 중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문경시 측은 “2020년 수해 때 기금을 많이 썼는데 지난해에는 큰 재해가 없어서 지출하지 않고 적립만 했다”며 “코로나와 관련해서는 기존 예산이나 예비비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광역지자체가 적립하는 재해구호기금은 5개 지자체의 지출률이 10%를 밑돌았다. 인천시는 기금 373억원 중 14억원가량만 사용해 지출률이 4.0%로 가장 낮았다, 경북도는 4.4%, 전남도는 6.2%에 그쳤다.
재난관리기금은 사전적 예방 활동이나 응급 복구에 쓰이고, 재해구호기금은 이재민 구호 등 사후적 활동에 주로 쓰인다. 두 기금의 적립액은 최근 급격히 증가했다. 전체 지자체의 재난관리기금 법정 적립액은 2014년 3646억원, 2015년 6047억원에서 지난해 8866억원을 기록했다. 재난관리기금은 최근 3년간 보통세입 평균액의 1%, 재해구호기금은 0.5%(특별시는 0.25%)를 적립해야 하는데, 세입이 늘어남에 따라 기금도 늘어난 것이다.
광역·기초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재난관리기금은 2020년부터 사용 용도가 대폭 확대됐다. 정해진 항목에만 지출할 수 있었던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에서 특정 항목을 제외하고 지출할 수 있는 포괄주의(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감염병 등 긴급대응뿐 아니라 유학생 관리 지원 등에도 기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또 재해구호기금 역시 코로나19 대응에 최우선적으로 쓰라고 지자체에 당부했다.
그런데도 지자체의 지출 실적이 낮은 것은 코로나 이전의 소극적 지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현 위기상황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기금액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자체도 있다. 경기도의회는 코로나 사태 이후 급격히 소진된 재난관리·재해구호기금을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극적으로 관련 기금을 사용하는 지자체도 있다. 재해구호기금의 경우 지난해 울산(96.4%)과 서울(71.6%), 강원도(62.9%) 등에서 지출률이 높게 나타났다. 재난관리기금도 경기도 광주시(95.1%), 경북 의성군(93.9%) 등에서는 지출률이 9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각 지자체장의 재량이다. 기금 지출률이 높은 지자체는 재난지원금부터 생활치료센터 운영, 백신 접종 중증반응 의료비 지원 등 다양한 곳에 관련 기금을 활용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지금 재난관리·재해구호기금을 쓰지 않고 남겨둘 이유가 없다”며 “지자체가 더욱 적극적으로 기금 사용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신재희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