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타설, 계약사 아닌 재하도급사가 ‘대리시공’한 듯

입력 2022-01-17 04:04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엿새째에 접어든 16일 119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실종자 한 명을 수습한 구조 당국은 이날도 수색작업을 이어갔다. 연합뉴스

붕괴 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신축 공사 중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편법적인 재하도급 형태로 이뤄진 정황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6일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콘크리트 타설 업무는 전문건설업체인 A사가 HDC현대산업개발과 계약을 맺었다. 붕괴 사고는 지난 11일 아이파크 201동 39층 바닥을 콘크리트로 타설하는 중에 발생했다. 붕괴 당시 타설 작업을 하고 있던 작업자 8명은 모두 A사가 아니라 A사에 장비를 빌려주는 임대계약을 맺은 B사 소속 직원들로 알려졌다. B사는 레미콘으로 반입된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올려주는 장비(펌프카)를 갖춘 회사다.

원칙적으로는 B사가 장비를 이용해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옮겨주면 타설은 골조 계약을 맺은 전문건설업체 A사가 직접 해야 한다. 그러나 B사는 콘크리트 운반과 함께 타설까지 일괄적으로 업무를 받아 B사의 직원들이 이른바 ‘대리시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불법 재하도급 규정을 피하고자 장비 임대계약과 용역 계약을 별도로 맺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표면적인 계약 관계로는 불법 재하도급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재하도급의 구조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건설업계는 이런 방식의 편법 재하도급 형태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타설 회사가 단가를 정해 펌프카 회사에 일괄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많다. 붕괴 사고가 난 현장도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재하도급 여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태부족했다는 주장도 추가로 제기됐다. 작업일지에 따르면 사고로 무너진 35~38층 바닥의 콘크리트 양생 기간은 6~10일 정도에 불과했다. 업계에선 겨울철에는 여름철과 달리 최소한 10일~2주 이상의 충분한 양생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선 119구조대원들은 여전히 실종자 발견에 어려움을 겪었다. 실종자 6명 중 1명은 지난 14일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돼 수습됐다. 구조대원들은 이날 나머지 실종자 5명 수색을 위해 지하 4층부터 지상 2층까지 적치물들을 헤치고 현장 수색을 이어갔다.

고층부는 145m 높이 타워크레인이 기울어진 상태로 붕괴 건물과 연결돼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이날도 강풍으로 콘크리트 잔해가 7차례 추락하면서 작업이 일시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하 4층부터 지상 1층까지는 낙하물만 주의하면 되지만, 층층이 무너진 23층 이상 고층부는 수색 중 추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안타까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버지가 실종된 A씨는 “부모님이 사고 전날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는 커플링을 맞췄다. 신혼부부처럼 밝게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울먹였다. 창호 작업을 하던 B씨의 아버지는 사고 당일이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일하던 날이었다. 다음 날부턴 다른 곳에서 근무하기로 돼 있었다. B씨는 “아버지가 11일까지만 이 아파트에서 작업하기로 했었다고 들었다”며 “다른 곳으로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