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재편, 원점으로… 업계, 안갯속으로

입력 2022-01-17 04:06

과당경쟁을 해소해 조선산업의 체질을 변화시키겠다는 목표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3년여간 달려온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은 유럽연합(EU) 반대로 좌초하면서 대우조선의 앞날은 안갯속이다. 조선업계는 ‘이전과 달라진 건 없다’는 입장이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짙어졌다.

지난 13일(현지시간)에 있은 EU 집행위원회의 결정 배경에는 ‘두 회사의 인수·합병(M&A)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초래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일단 한국 정부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EU 발표 직후 정부는 “최근 조선산업 여건이 (M&A를 추진했던) 2019년보다 개선돼 EU의 불승인 결정이 우리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나, 조선업계 생각은 다르다. 우선, 현재를 ‘슈퍼사이클’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는 올해 글로벌 발주가 지난해(4696만CGT)보다 약 23% 감소한 3600만CGT에 그친다고 추산한다. 과거 호황기에 연간 4000만~6000만CGT 수준의 발주가 이뤄졌음을 감안하면, 현재는 불황기 끝자락 혹은 호황기 진입단계에 가깝다고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16일 “단기 영향은 없겠지만, 대우조선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더 공격적 수주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공급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시황이 나빠지면 국내 조선 3사 간 수주경쟁의 폐해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재매각은 순항할지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된다. 한국조선해양의 경우 대우조선에 투입하려고 했던 1조5000억원을 투자하지 않게 되면서 잠재적 재무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건은 대우조선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대우조선의 부채는 7조6634억원이다. 부채비율이 297.3%에 이른다. 2019년, 2020년보다 재무 상태가 악화했다. 헤비테일(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 조선업 특성상 지난해 수주 실적은 2023년에나 흑자 전환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재매각에 나서겠지만, 대우조선의 새 주인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U의 M&A 불허 이유를 고려했을 때 삼성중공업은 가능성이 없다. 잠재적 후보군인 포스코, 한화, 효성 등은 현재 조선업에 관심 없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이 방위산업 부문을 갖고 있어 해외 매각도 어렵다.

결국 국내 조선업계는 저가수주, 과당경쟁, 중복투자 등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미래를 고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민간영역으로 보내는 건 당연하지만,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서두르기보단 전략과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조선 3사도 경쟁을 하면서도 일정 부분 상생의 마인드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