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충 빨리’ 인재?… “20년 간 이렇게 심각한 현장 못 봐”

입력 2022-01-13 00:03 수정 2022-01-13 00:03
구조물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는 여러 층의 구조물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규모를 키웠다. 눈이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서두른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추운 날씨에선 콘크리트 타설 속도를 늦추는 게 건설현장의 상식이다. 다만 공사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압박에 자주 무시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고질적 병폐를 바꾸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고는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에 따르면 사고가 난 구조물은 무량판구조다. 흔히 쓰이는 벽식구조와 달리 하중을 지탱하는 수평구조 부재가 없는 기둥과 슬래브(상판)가 쓰인다. 때문에 최상층부에서 발생한 충격에 23층부터 38층까지 16개 층이 도미노처럼 무너졌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구조적 취약성에다 현장에서 시행한 ‘시스템 거푸집’ 공법이 충격을 더했을 수도 있다. 시스템 거푸집 공법은 2개 층의 경화 콘크리트 위에 거푸집을 설치하고 맨 위의 한 층을 추가로 타설해 3개 층을 한꺼번에 작업하는 공법이다. 콘크리트가 제대로 굳지 않으면 위험부담이 커 온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작업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러자면 한 개 층을 작업하는 데 열흘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5~7일에 1개 층씩 작업을 진행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결국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위험부담을 떠안고 작업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2일 오전에 사고 현장을 방문한 송창영 광주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외벽과 접한 슬래브 수개 층이 붕괴했는데, 20년간 안전진단하면서 이렇게 심각한 사고 현장은 본 적이 없다. 동절기 공사에 대한 현장의 역량이 부족해서 생긴 사고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사고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타워크레인 월타이(콘크리트 벽과 타워크레인 지지물)와 거푸집이 유독 강했던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뽑히면서 외벽을 먼저 붕괴시켰을 수 있다. 사고 직전 타워크레인 쪽에서 큰 소리가 난 뒤 건물 바닥이 내려앉았다는 작업자 증언도 나왔다.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드러나기까지는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일선 공사현장에서는 공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고질적 문제’가 대부분 산업재해의 배경에 깔린 것만은 분명하다고 비판한다. 한 신축 아파트의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는 “안전을 이유로 공사를 미루거나 쉬어도 장비 대여료, 인건비는 그냥 빠져나가기 때문에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작업을 늦출 수 있겠나”라며 “작업 중지를 장려하는 경우에도 그런 걸 요청하면 나중에 입찰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13일부터 이틀간 전국 65개 현장의 공사작업을 중지한다.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고위험 작업의 관리 현황을 파악할 방침이다. 위험성 상위 등급의 작업장소에는 직접 찾아가 작업계획, 작업 방법, 안전관리 체계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현장 안전과 품질을 확인하고 나면 공사를 재개한다. 부실공사 의혹에 따른 불안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