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학원·독서실 등 교육시설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적용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코로나19 국면에서 학교생활의 어려움으로 학업성취도와 행복도가 낮아졌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정상적 학교 운영이 장기화되면 성적과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자료를 낸 것인데 기본권 침해 여부나 백신 위험성이 아닌 공교육 가치를 말해 논점을 벗어났다는 비판이 나왔다.
1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 측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은 지난달 31일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 사건을 심리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에 추가 서면 자료를 제출했다. 126쪽 자료에는 교육부의 지난해 보도자료인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교육회복 종합방안 기본계획’ 등이 첨부됐다. 2020년 11월 고등학교 2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학업 성취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시험에서 보통학력(3수준) 비율이 전년 대비 감소하고 기초학력 미달(1수준) 비율은 증가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학교생활 행복도 조사에서도 중·고등학교 모두 전년 대비 각각 4.9% 포인트, 3.5% 포인트씩 ‘행복도 높음’ 비율이 감소했다는 자료도 첨부했다. 이를 근거로 “학교 교육 정상화에 대한 선제적 준비조치로서 청소년에 대한 방역 강화 조치 필요성과 그 일환인 방역패스의 필요성도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자료가 백신 접종의 합리성이나 방역패스의 정당성을 소명하는 것과 거리가 있고, 논리적 전개도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학계는 정부의 동문서답식 논변이 문제였다고 보고 있다. 개인의 기본권 제한과 신체 자기결정권이 쟁점인 사안에서 학업성취와 공교육 정상화를 논거로 제시한 것은 납득이 어렵다는 뜻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백신 접종의 안전성과 이로 인한 공익을 전제한 것이 아니라 학업성취를 위해 방역패스를 시행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소송 당사자들도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교육 문제를 학원·독서실의 방역패스와 결부시킨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상무 함께하는사교육연합 대표는 “방역패스를 학원에 적용하면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백신을 안 맞으면 공교육이 안 된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고 지적했다. 김수진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도 “우리나라는 녹화교육 위주라 학업성취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 측은 서면에서 형평의 원칙상 청소년 역시 타인과 동등한 수준의 협조와 희생을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러나 정작 자료에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시작되던 지난해 11~12월 질병관리청의 확진자 통계 정도가 추가됐고, 청소년에 대한 백신 안전성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의학적 자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학부모 측을 대리한 함인경 변호사는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할 만한 중대한 공익이 무엇인지 밝히는 의미 있는 통계가 없다”고 말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