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관계냐?” 피해 아이 두 번 울리는 법정질문… 대안은?

입력 2022-01-12 00:06

“거기에 왜 따라갔습니까? 싫으면 옷을 못 내리게 바지를 잡았어야지. 성관계가 처음인가요?”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실제로 들었던 질문들이다. 아동형 해바라기센터에서 16년을 근무한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10일 법원 내 연구회 주최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 사례를 소개하며 “이런 질문은 성인 피해자에게도 힘들며 건전한 성경험이 전혀 없는 아동·청소년에게는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가 마련된 건 더 많은 미성년자들이 법정에서 이런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탓이다.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진술 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특례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였지만 이로 인해 당장 법정 출석 요구를 받는 미성년 피해자가 늘어나게 됐다. 피해자 보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원은 최근 수사기관, 성폭력전담기관 등과 대책 논의에 나선 상황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법정 안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박기쁨 판사는 “현실적으로 성폭력 범죄사건 재판에서 종종 피해자의 성적 지향, 성경험 등에 관한 신문이 제한 없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조현주 변호사는 “어린 피해자의 경우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다그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헌재가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제시한 대안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헌재는 2차 피해를 줄일 방법 중 하나로 증거보전절차를 들면서 수사 초기단계부터 이용하면 피해자가 법정에서 반복 진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오정희 검사는 이에 대해 “재판절차와 수사절차의 차이를 간과한 견해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세밀한 입증 계획 없이 초기단계부터 신속하게 증거보전절차를 하면 수사 진행 상황이 노출돼 자칫 증거인멸의 기회를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활용되는 진술조력인 제도, 재판장의 소송지휘권 행사 과정에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 판사는 “재판장이 신문사항을 제출받아 단독으로 신문하는 방식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면서 “이는 재판장에 의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므로 법관들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과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옥선 진술조력인도 “현재는 진술조력인 제도의 적용 범위가 한정돼 있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와 입법 차원의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오선희 변호사는 아동이 여러 기관을 돌아다니며 반복 진술할 필요가 없도록 하나의 기관에서 사법절차를 마칠 수 있게 한 북유럽 ‘노르딕 모델’을 소개했다. 오 변호사는 “실무상 차이는 있지만 해바라기 아동센터가 해당 개념과 유사한 면이 있다”며 “제도를 만들 수 있는 토대는 현존하는 셈”이라고 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