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터줏대감서 월드스타로… “나 스스로 괜찮은 놈 말해”

입력 2022-01-11 04:05
배우 오영수가 출연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가 10일 서울 대학로의 극장 앞에 붙어있다. 오영수는 이날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TV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

원로배우 오영수가 10일 제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넷플릭스를 통해 내놓은 소감이다. 1967년 극단에 있던 친구의 말에 솔깃해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55년 만에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오영수는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며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해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오겜)에서 그가 연기한 1번 참가자 오일남은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노인이다. 각자 살기 위해 남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상황에서 “깐부끼리는 네 것 내 것 없는 거야”라는 오일남의 대사는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골든글로브는 오영수를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연극배우로 첫 손에 꼽힌다. 넷플릭스의 흥행 시리즈 오겜으로 첫 골든글로브 수상 후보에 올랐다”며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등 주요 연기상을 받았고 ‘동승’(2002) 등 영화에도 다수 출연한 베테랑”이라고 소개했다.

오영수는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1987년부터 20여년간 국립극단을 지키며 ‘리어왕’ ‘파우스트’ ‘3월의 눈’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등의 작품에 참여했다. 영화에선 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등에 승려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오겜 흥행 이후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광고 모델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깐부’라는 대사가 광고에 활용되면 작품의 의미가 훼손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평생 연극 무대에서 닦아 온 연기 내공이 인상적인 캐릭터와 만나 전 세계에 ‘깐부 신드롬’을 일으키고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오겜 속 오일남은 중반 구슬치기 장면과 결말에서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라며 “조연이지만 비중이 큰 역할이었는데 수십년 연극을 해온 경험을 역할에 잘 녹였다”고 말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보는 사람이 캐릭터 그 자체로 느끼도록 오영수는 몰입해서 연기하는, 진정성과 존재감을 가진 배우”라며 “선이 굵지만 여러 겹의 감정을 잘 표현해내는 유연함이 장점이다. 오겜에서도 그 힘이 드러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영수처럼 평생 연기에 헌신한 배우들에 대한 재평가도 강조했다. 그는 “TV 등에서 연령대 있는 배우들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소비하곤 한다. 원로배우의 가치를 인정하고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