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일감 몰아주기법’… 공정위 “부당지원 조사 가능”

입력 2022-01-11 04:03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 개정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12월 30일 시행됐지만 현대차와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감시망을 피하게 됐다. 총수 일가 지분율 20%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미달하도록 조정해놓고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외치는 대기업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글로비스 없는 글로비스 방지법’이라는 지적에 경쟁 당국은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하라도 계열사 간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행위가 포착되면 공정거래법 상 부당지원 금지 조항으로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7일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의 지분 1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 그룹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정의선 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율은 29.99%에서 19.99%로 변경돼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이에 앞서 삼성생명과 LG그룹도 지분 정리를 마쳤다. 지난해 12월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삼성생명 보유 지분 3.46%의 절반인 1.73%를 매각하면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20.82%에서 19.09%로 조정됐다. LG 계열사인 S&I코퍼레이션은 자회사 S&I건설과 S&I엣스퍼트 지분 60%를 매각하면서 자회사 지분율 50% 기준에서 벗어나 규제를 피하게 됐다.

대기업의 ‘규제 피하기 꼼수’는 지난 2015년과 판박이다. 당시 사익편취 규제를 받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 기준은 30%였는데, 이때도 기업들은 지분율을 29.99% 등으로 조정하면서 규제를 피해갔다. 지난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지분율 기준이 20%로 강화되자 기업들은 이번에 또다시 지분율 정리에 나선 것이다.

개별 기업을 제재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계속 고치기도 쉽지 않아 공정위와 입법 당국은 난감해하는 기색이다. 가령 지분율 기준을 20% 미만으로 낮출 경우 총수 일가가 거두는 이익 규모가 줄어들어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10일 “지분율을 20% 미만으로 정하면 사익의 규모가 줄게 되는데, 그 정도의 사익을 과연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지분 10%를 보유한 칼라일 그룹이 정의선 회장과 우호적 관계인 점을 들어 총수 일가 지분을 우회적으로 보유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총수 일가 지분율을 따질 때는 법인이나 재단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우회 보유를 입증하더라도 현행법으로 제재하기는 어렵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45조 불공정거래 행위의 금지 조항을 통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감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 공정거래법으로 총수 일가가 과도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는 일부 반영된 것으로 평가한다”며 “꼼수를 부려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는 기업의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 행위 금지 조항으로 규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