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얼 테이블·손편지… ‘비대면 장례’ 유족에 세심한 위로

입력 2022-01-11 03:01

지난해 3월 팔순이 훌쩍 넘은 어머니를 코로나19로 여읜 A집사는 반년이 지나서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그는 10일 “코로나19 진단을 받으셨기 때문에 가족들은 임종을 볼 수 없었고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다”며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 곳이 없었고 위로받고 싶어도 위로받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부 방역지침에 따라 조문이 제약되면서 A집사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이 많다. 장례예배 풍경이 변화하고 초점도 바뀌고 있다.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다양한 방법도 나온다.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이춘수 전도사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장례 예식을 최소화하는 경우가 많고 아예 조문을 받지 않는 ‘무빈소’ 장례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장례식장 자체가 매우 엄숙하고 적막하다. 교회 장례 예식도 찬송 없이 간단한 말씀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조문객을 받지 않거나 조문객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고인을 추모하고 서로를 위로할 시간이 적다는 뜻이다.

목회자가 담당하는 장례예배는 대개 4가지다.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장지에서 드리는 천국환송예배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이 절차는 일부 생략되거나 대폭 간소화되고 있다. 코로나로 사망한 경우 시신을 바로 화장하기 때문에 입관 절차조차 없다. 예배에서 찬송을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목회자는 “코로나로 별세한 분의 장례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1분 만에 끝나더라. 유족들은 매우 황망하고 쓸쓸했을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돌봄과 위로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목회자는 장례예배에서 유족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를 전한다. 권준호 경기도 용인 송전교회 목사는 “코로나 이전에는 조문객까지 고려해야 했지만 이후에는 유족에 집중하는 말씀을 전하게 된다”며 “유족에 ‘아버님을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강조한다”고 했다. 과거 유족들과 성도들은 화장터나 장지에 갈 때 찬송을 불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찬송을 재생하고 무선 스피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지난해 3월 ‘팬데믹에도 장례식이 필요한 4가지 이유’라는 칼럼에서 “장례는 애도를 위한 슬픔의 공간이고 육신을 떠나보내는 의례이며, 죽음과 부활의 연결 고리이고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장례는 서로 짐을 지고(갈 6:2), 우리가 받은 위로로 위로하고(고후 1:5~6), 그 날이 가까움을 보며 서로를 격려하는(히 10:25) 절차이다.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청란교회) 목사는 “목회자들은 형식적인 장례가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유족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송 목사는 목회자가 고인을 위한 ‘발인예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추도사를 준비해 유족에 전달할 것을 권했다. 그는 “목회자는 이 추도사를 잘 준비해서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눌 필요가 있다. 추도사를 통해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추모가 일어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목회자가 유족에게 직접 위로하는 손편지를 쓰거나 유골을 직접 받아 허토(관 위에 흙을 뿌리는 것)할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로 별세한 경우 성도의 죽음이 고귀하다는 것을 전할 필요가 있다. 박삼열 사랑의교회 부목사는 코로나로 소천한 경우 유족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성도님을 떠나보내는 것은 그 죽음이 어떤 모양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고귀한 것입니다.”(시 116:15, 히 11:13) 찰스 스펄전 목사는 성도가 비참한 상황에서 죽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동일한 ‘영광의 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죽음의 양상이 어떻든지 성도는 영광의 문을 통과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례는 교회 공동체에 죽음이 무엇이고 어떻게 천국을 소망해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송 목사는 “장례식 후 교회 한쪽에 별세한 분의 ‘메모리얼 테이블’을 제작해 교인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테이블에는 돌아가신 분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성경 등 유품을 준비한다.

서울 마포구 신촌성결교회(박노훈 목사)는 장례예배에서 고인의 삶을 회고하며 추모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는다. 최재준 부목사는 “‘추도’의 ‘도(悼)’는 한문으로 ‘슬퍼할 도’를 쓴 데 비해 ‘추모’의 ‘모(慕)’는 ‘그리워할 모’를 쓴다. 고인의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며 기리는 일에 중점을 두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강주화 박재찬 박지훈 박용미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