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서 흔히 접하는 밀가루 대부분은 수입산이다. 2020년 기준 국내에서 소비된 밀 중 국산 밀 자급률은 0.8%에 불과하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자급률을 2025년까지 5.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국산 밀 업계 대부분은 반기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선 뒷북 대응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목표 달성이 보다 쉬웠던 11년 전에는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진흥책을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국산 밀 관련 예산은 전년(169억3900만원) 대비 40.8% 증가한 238억4300만원이 책정됐다. 2020년만 해도 33억9000만원에 불과했던 밀 관련 예산이 불과 2년 사이 7배나 덩치가 커졌다. 2020년 11월 발표한 ‘1차 밀 산업 육성 기본 계획’ 영향이 컸다. 이 계획에는 정부가 수매하는 밀 비축량을 늘리고 밀 생산단지를 확대하는 사업 등에 예산을 대거 투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5년간 국산 밀 자급률을 4.2% 포인트 더 늘리겠다는 목표치도 제시했다.
정부는 식량 안보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을 오가는 물류 여건은 크게 악화됐다.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밀의 경우 수입길이 막히면 대안이 없는 게 사실이다. 빵 등을 먹지 못하거나 고가에 거래되며 서민 지갑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국산 밀 보급률을 높이려는 이유다.
다만 11년 전에 지금처럼 했다면 적은 노력으로 목표 달성이 쉬웠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11년 당시 국산 밀 자급률은 1.9%로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지속적인 생산 증가를 위해 수입산 대비 1.6~2.7배 더 비싼 국산 밀의 소비처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을 정도였다. 2011년 8월 국회에서 열린 ‘국산 밀 소비 확대를 위한 정책 포럼’ 기조 발제를 맡았던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산 밀을 수매하고 군급식 등 공공급식과 연결해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묵살됐고 밀 자급률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다른 품목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밀 만큼이나 자급률이 떨어지는 옥수수(2020년 기준 3.6%)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없다. 뒤늦게 밀 자급률 상향 지원에 나선 경험은 반면교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그래도 국산 밀 지원을 다시 시작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