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 낸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당시 연세대생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28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8일 퇴원했다. 주변인과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등 한때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루 만에 다시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빈소는 조선대병원장례식장 1분향소에 마련됐다. 11일 오전 9시 발인한 후 5·18 구묘역인 광주 망월동 8묘역에 안장된다. 시민사회단체는 유족들과 협의해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를 꾸려 광주에서 사회장을 치르고 서울에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배 여사 빈소를 직접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빈소에서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족에게는 “고인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고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오후 4시40분쯤부터 약 8분간 빈소에 머물렀다. 문 대통령은 2020년 6월 배 여사의 민주화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직접 수여한 바 있다.
평범한 주부이던 배 여사는 아들 이 열사가 1987년 6월 연세대 앞 민주화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후 아들의 뒤를 이어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1991년 대학생 분신 정국을 시작으로 2009년 용산참사 때 한걸음에 달려가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해서는 각종 민주화 시위·집회를 주도했다. 1998년부터 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직접 이끌어냈다. 이후에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의 상처를 보듬고 30여년간 민주투사와 다름없는 삶을 꾸렸다.
배 여사는 1987년 1월 경찰 고문으로 숨진 후 6월 항쟁의 불씨가 된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씨에 견주어 ‘유월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배 여사의 별세 소식에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6월과 민주주의의 어머님, 배은심 여사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이 열사와 배은심 여사님의 그 뜻, 이제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