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나랏돈이 호주머니 쌈짓돈인가

입력 2022-01-10 04:02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집권하면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기능을 분리해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처를 신설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 후보는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받드는 것은 결국 선출 권력이고,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의 지휘에 따르도록 헌법과 법률에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후보가 기재부를 향해 날 선 말을 쏟아낸 건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역화폐 예산 삭감부터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이 후보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것이냐” “기재부는 죽어도 잡히질 않는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 여당 대통령 후보가 특정 부처를 계속해서 공개 비판하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에 대해 한 기재부 고위 공무원은 “여전히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기 어려우니까 대신 기재부를 때리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修辭)”라고 해석했다. 중앙정부 부처나 여의도 정치 경험 없이 변방(지자체)의 경험만 있는 이 후보의 이력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대선이 가까워져 올수록 이게 단순한 이 후보 개인의 피해의식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여당의 계산된 정권 재창출 전략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 이 후보 캠프가 발표한 탈모약과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비롯해 그동안 이 후보가 언급해 온 ‘이재명표 정책’ 대부분은 나랏돈 풀어 국민에게 준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는 그러면서도 “증세는 자폭 행위”라며 세금은 안 늘리겠다고 한다. ‘나를 위해 이재명’이라는 이 후보 캠프 슬로건은 이런 이 후보의 지향점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팍팍한 살림살이를 사는 장삼이사에게 재정건전성이 어떻고 하는 얘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돈 몇 푼 쥐여주는 게 더 와닿는다는 걸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받는 국민이야 좋은데, 나라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기재부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현 정부 임기 동안 이미 상당한 나랏돈을 썼다.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429조원에서 시작했던 국가예산은 올해 604조원으로 늘었는데, 국가채무는 660조원에서 1064조원으로 직전 2개 정부(이명박·박근혜정부) 증가폭을 합친 것보다 더 크게 불었다. 코로나19 위기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정부의 지출 부담이 커진 건 부인할 수 없다.

기재부가 이 후보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경 편성을 두고 대립각을 세운 것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지출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는 판단인데, 이런 판단을 두고 이 후보는 “기재부가 정치를 하려 한다”고 윽박질렀다. 공무원의 이 정도 판단조차 허용하지 않을 거면 애초 공무원을 뽑을 때 사칙연산 할 줄 아는 ‘예스맨’만 앉히면 되지 않나. 어쨌거나 거대 여당을 등에 업고 대통령 마음대로 돈 팍팍 쓰겠다는 계산이다. 그야말로 선출 권력은 무엇이든 해도 옳다는 ‘현대판 왕권신수설’이다.

이 후보는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돌파해도 문제없다”며 재원을 빚으로 마련하겠다는 걸 공식화했다. 그러나 국가채무가 100% 넘어도 괜찮다는 얘기는 기축통화국인 미국, 일본 얘기지, 한국으로서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한국처럼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빠른 국가에서 늘어난 국가채무는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게 분명한데, 이 후보만 믿고 그 길을 가기에 국가 전체의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폭증한 국가채무로 경제 위기가 생길 때쯤 이 후보는 그 자리에 없을 것 아닌가. 기업 반발이 쏟아지는 ‘탄소 중립’ 추진에는 “당장 불편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감수해야 한다”고 하는 이 후보와 민주당이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떠넘기려 하는 이 지독한 모순은 어찌해야 하나.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달콤한 사탕발림만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빚내서 나랏돈 펑펑 쓰는 걸 할 줄 몰라서 안 했겠는가.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