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경기도 평택 화재 사고 현장에서 잔불 진압을 하던 소방관들이 한 손에 안전모를 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나왔다. 노란색 방화복은 화재 현장의 재가 묻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동료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에 진압 작업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현장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번갈아 들려왔다. 화재 소식을 듣고 오전 9시쯤 화재 현장에 달려와 지원 활동을 벌이던 한 50대 의용소방대원은 소방관들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화재 현장이나 소방서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던 사이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오전 화재 진압 작업을 벌인 한 소방관은 “내부가 말 그대로 완전히 다 탔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어 “건물이 워낙 커서 잔불을 찾아 진압하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불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렇게 커져버리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밤새 타오르던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것으로 판단된 오전 9시8분 소방관 5명이 산소통을 메고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현장 탐색 결과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가 접수됐다. 공사현장 1층에서 일하고 있던 작업자 5명도 모두 무사히 대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인명피해가 없다는 사실이 전해진 후 검은 연기가 진해지기 시작했다. 5명의 소방관이 여전히 현장에 남아 진압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이내 시커먼 연기가 화재 장소인 냉동창고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오전 9시21분 대응 2단계로 격상됐다. 인접 5~6곳의 소방서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됐지만 소방관 3명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불길이 다시 커지기 직전 ‘폭발음’이 들렸다는 현장 목격자 진술도 나왔다. 큰 불길이 잡힌 이후 폭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화재 현장 시설 관계자는 “오전 9시를 조금 지나 폭발음이 들려오면서 시커먼 연기가 확 커졌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건물 안에 있는 우레탄이 폭발하면서 시커먼 연기가 건물 틈으로 뿜어져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순직한 소방관 3명은 모두 송탄소방서 소속 3팀 동료들이었다. 팀장 이형석(50) 소방위는 주변의 존경을 받던 28년차 베테랑 소방관이자 자녀 2명을 둔 가장으로 알려졌다. 박수동(32) 소방교는 결혼을 세 달 남겨둔 ‘예비 신랑’이었고, 팀의 막내인 조우찬(25) 소방사는 임용된 지 1년도 안 된 새내기 소방관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한 소방관 2명도 이들과 같은 팀이었다.
빈소는 이들이 근무하던 소방서 근처 장례식장에 나란히 차려졌다. 박 소방교의 아버지는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살 자신이 없다. 미안하다”며 오열했다. 이 소방위의 유족들도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느냐” “구조대라는 자부심이 컸는데…”라며 통곡했다.
평택=신용일 기자, 김판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