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입력 2022-01-06 20:12 수정 2022-01-06 21:23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포도송이처럼 영글어가고 있는 나의 꿈을
뚝 뚝 떼어내며 웅크린 내 잠에
확 불빛을 쏘아대었다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둡고 따스한 잠 속에 끊임없이 울려오는
무거운 물방울 소리들
신성한 외로움에 빠진 나의
둥근 영혼을 누가 불안하게 하는가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머리가 먼저
으깨어진다 세상에 대한 불길한 나의 사랑이
누군가를 붉게 물들인다

-조용미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중

중견·원로시인들의 첫 시집을 복간하는 ‘문학동네 포에지’ 프로젝트로 나온 조용미 시인의 첫 시집. 1996년에 발표된 시집이 25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돌아왔다. 시인은 개정판 시집에 “내 시의 출발점인 이 시집을 출간한 후부터 지금까지, 돌이켜보니 시 말고는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