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사진) 법무부 장관은 6일 최근 주목을 받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아무 문제 없이 이뤄지다가, 공수처 수사 대상이 대검찰청과 언론인이 되니 사찰 논란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이 통신사 등에 공문을 보내 통신자료를 확보하는 일은 과거부터 검경과 국가정보원의 수사 관행으로 계속됐는데 갑자기 논란이 됐다는 의미다. 박 장관은 “정치적인 공세가 아니면 훨씬 좋은 공론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통신자료 제공을 놓고 그간 문제 제기나 논란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박 장관 본인도 통신자료 제공을 인권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봤었다. 박 장관은 2017년 3월 이선애 헌법재판관의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께서 그 점에 소극적인 것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통신자료 제공 근거로 쓰이는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의 삭제를 권고할 때, 비상임위원이던 이 재판관이 “통제를 강화할 경우 수사를 지연시킬 수 있다”며 소수의견을 낸 것을 지적한 말이었다. 당시 박 장관은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인권위원 한 분, 한 분이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훨씬 강력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이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통신사에 열람 신청하는 일이 유행될 정도로 이번 사태가 커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공수처 해명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했고, 일부는 통신자료를 넘어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수집당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피의자의 상대방’ 인적사항을 확인한 데 불과하고 언론 사찰은 어불성설이라고 진화했지만 이후 기자의 가족, 지인의 통신자료까지 공수처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자가 ‘피의자의 상대방’으로서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이 아니라, 통신영장 발부 대상이 됐다는 의미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공익신고를 했던 장준희 부장검사도 공수처 수사 대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국민일보에 “공수처에서 인터넷 로그인자료 등 통신 수사를 했다고 한다”며 “정보공개, 민형사상 청구를 병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부장검사가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넘기게 된 사건인 CCTV 유출 의혹, ‘이성윤 공소장’ 유출 의혹은 아직 뚜렷한 수사 결과가 제시되지 않았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번 논란에 우려를 표하며 “시급한 개선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냈다. 언론인이 대상이어서 논란이 벌어졌다는 말과 달리, 이 성명에는 국내외 기관이 2014년부터 수차례 한국의 통신자료 제공 제도를 지적한 내용이 담겼다. 인권위는 2014년 2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권고했고 2016년 11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017년,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은 2019년 제도 개선 필요 견해를 표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