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아동이 다른 곳도 아닌 법정에서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대책이 필요합니다.”
19세 미만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진술 녹화를 법정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응해 검찰과 법원이 일제히 보완책 마련에 착수했다. 성폭력 피해 아이들이 법정에 나와 가해자와 마주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높아지면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5일 ‘젠더폭력처벌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회의 주요 안건은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보호 방안’이었다. 먼저 성범죄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외국 입법례 등이 검토 대상으로 제시됐다고 한다. 법정이 아니더라도 전문조사관을 통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간접적으로 보장하는 북유럽 ‘노르딕 모델’ 등이 논의 대상에 올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 아동 보호라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신속하게 형사법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헌재는 지난달 23일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진술 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제30조1항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이에 따라 성범죄 피해 아동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담은 영상 녹화물을 피고인 측이 인정하지 않으면, 피해 아동은 직접 법정에 나와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성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피고인 측이 피해 아동을 반대신문하는 과정에서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을 추궁하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범죄 피해 아동의 재판을 진행할 법원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경미 대법관이 회장을 맡은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는 오는 10일 긴급토론회를 열어 미성년 성범죄 사건에서 법원이 취해야 할 조치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 부소장과 조현주 국선변호사가 미성년 피해자들의 진술상 특성을 설명하고,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와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판사 등이 수사·재판상의 실무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무부가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이날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권을 강화하고 성범죄의 양형조건을 개정하는 내용의 4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성범죄 사건의 양형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회복적 사법’과 ‘피해자 관점의 요소’가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성범죄 사건의 양형 요소에서 ‘진지한 반성’이나 ‘처벌 전력 없음’ 같은 가해자 위주의 사유가 주로 담겼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위원회는 또 “성범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양형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권고안을 접수한 법무부는 “합리적인 양형 실현을 통해 성범죄에 엄정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양민철 조민아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