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선 문어 산채 못 삶는다는데… 한국 동물복지는 ‘걸음마’

입력 2022-01-07 04:06

영국 정부가 문어와 게, 바닷가재(랍스터) 등을 동물복지법에 포함키로 하면서 ‘동물’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정의하는데, 문어 등의 경우 무척추동물이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여러 연구 결과 확인됐다. 한국도 보호 대상 동물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런던정치경제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보고서를 토대로 오징어와 문어 등이 속한 ‘두족류’와 게, 바닷가재가 속한 ‘십각류’를 동물복지법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문어나 게 등이 중추신경계를 통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 중심으로 논의되던 동물복지법의 적용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두족류와 십각류를 포함하는 동물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영국에서는 앞으로 문어를 산 채로 끓는 물에 삶는 조리법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대안으로 전기 충격이나 냉동으로 기절시킨 뒤 조리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이에 반해 1991년 제정된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척추동물만이 보호 대상이다.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양서류·어류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식용 목적의 동물은 제외된다. 2020년 11월 경남어류양식협회는 일본산 활어 수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활어를 내던졌는데, 경찰은 이를 동물 학대로 보고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시위에서 내던져진 활어는 식용 목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한국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이 담긴 민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는 등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문어나 게를 동물보호법이 보호하는 동물로 포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동물복지정책을 다루는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6일 “동물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동물보호법 보완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무척추동물을 동물의 범위에 포함할지 등을 검토했다”며 “다만 구체적 논의가 진행된 것은 아니다. 동물의 정의를 어떻게 확대할지는 여러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양식 과정에서 문어가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며 양식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관계자는 “문어가 인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여러 논문을 통해 확인된 만큼 동물복지정책을 연구할 때 그 부분을 고려하고 있다”며 “국제적으로 문어 양식을 못 하게 하거나 금지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측은 “척추동물로 한정하고 있는 현행법상 포괄적인 동물 보호에는 법률적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 법적으로 보호받는 동물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