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학원·독서실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의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해 정부 측에 요청한 것은 ‘객관적 데이터’였다. 특히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에 “과거 자료가 아닌, 최신 통계 자료를 내 달라”는 석명(釋明)까지 구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과 돌파감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정부 측이 제출한 자료 상당수가 과거 데이터였다고 지적한 것이다.
5일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지난달 24일 백신패스 집행정지 심문기일에서 “전 국민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율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에게도 백신패스를 강제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의 코로나 위중증 위험은 얼마나 되는지’ ‘백신 접종자의 돌파감염 위험성은 어떤지’ 등을 판단할 객관적 자료도 제출해 달라고 했다. 단순히 집단면역 필요성과 감염 위험성을 우려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 근거로 입증하라는 취지였다.
복지부는 재판 당일에만 160페이지 넘는 답변서를 냈다. 이후 추가 자료까지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난 4일 “백신 미접종자에게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코로나 감염률·위중증률 등이 현저히 높아지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소송을 제기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상 정부 측이 자료로 법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정부는 이날 즉시 항고해 상급심 판단을 받기로 했다.
법조계는 이번 소송을 당초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바라봤다. 코로나 관련 방역 자료를 축적해 온 복지부를 상대로 학부모 측이 방역패스의 부당함을 데이터로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대신 학부모 측은 코로나 백신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위중증 환자가 된 사례 등을 취합해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소송에 참여한 학생들도 스스로 의견서를 썼지만 법원에 제출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학부모 측은 항고심에서도 정부가 짊어져야 할 방역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 측 변호를 맡은 함인경 변호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조치들에 대해 계속 다툴 예정”이라고 했다.
법원의 이번 판단이 다른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조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방역 조치가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청소년에게만 국한되는 논리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백신 알레르기나 부작용을 겪은 사람, 가족력이 있는 사람, 임산부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이들에 대한 예외적 조치가 없다는 점은 방역패스에 대한 다른 소송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은 지난달 31일 보건복지부장관 등을 상대로 방역패스 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 등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7일 첫 심문기일이 열린다.
양민철 임주언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