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제조사 토요타가 지난해 미국에서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가장 많은 차를 판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외국 회사가 연간 판매 1위를 차지하기는 120년 역사상 처음이다. GM은 자국 시장에서 90년 만에 2위로 밀려났다.
토요타는 지난해 미국에서 2020년보다 10% 이상 증가한 233만2000대를 팔아 221만8000대 판매에 그친 GM을 앞질렀다고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직전인 2020년만 해도 GM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255만대를 팔아 2위 토요타(211만대)를 크게 앞섰다. GM은 포드를 제친 1931년부터 한 번도 미국 내 연간 판매 1위 자리를 내준 적 없었다.
자동차 산업을 연구하는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과 에릭 고든 교수는 NYT에 “미국 시장에서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지배력은 이제 끝났다”며 “토요타는 올해 다시 GM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이겼다는 사실은 업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국산(미국)차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중고차 가격이 폭등할 정도로 차를 사려는 사람이 널렸었지만 대다수 완성차 업체가 차량용 반도체 기근에 생산량을 줄이고 수익성 높은 모델에 집중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자동차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데다 컴퓨터와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판매가 급증하면서 자동차에 쓸 반도체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 토요타가 전년보다도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를 미리 확보해둔 덕이었다. 토요타는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주요 부품 생산 중단을 겪은 뒤 부품 비축량을 늘렸다고 NYT는 설명했다.
반면 전기차 제품군 확대를 선언한 GM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터리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제조 결함 때문에 주력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의 생산도 중단했다.
1965년 미국에 진출한 토요타는 켄터키주 조지타운에 세운 첫 번째 미국 공장에서 1988년부터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현지 업체들이 고전하는 동안 토요타는 품질에 대한 명성을 쌓아갔다.
토요타는 1989년 렉서스 브랜드를 출시하며 고급차로 제품군을 확장하고 2000년에는 대형 픽업트럭 툰드라를 추가해 현지 브랜드와 더욱 적극적으로 경쟁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토요타 중형 세단 캠리는 미국 내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로 자주 이름을 올렸다. 토요타가 크라이슬러와 포드를 추월한 지는 이미 오래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연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는 프리우스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며 위상을 더욱 높였다. 미국에서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는 여전히 지배적이다.
다만 전기차 시대 초입에서 토요타가 완전 전기차 도입에 비교적 소극적이라는 점은 향후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과 씨름하기는 토요타도 마찬가지다. 토요타는 최근 몇 달간 반도체 비축량을 소진한 데다 공급업체의 생산 확대를 기다리느라 전 세계적으로 차량 생산 속도를 급격히 줄여야 했다고 NYT는 설명했다. 토요타는 이번 성과를 어떤 종류의 광고에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