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강원도 동부전선 철책선을 넘어 월북한 상황에 대한 군의 조사 결과는 참담하다. 일반전초(GOP) CCTV에는 월북자가 철조망을 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3곳의 CCTV에 5차례나 포착됐다. 그런데 CCTV를 다시 돌려보면서 녹화 시간 입력 잘못으로 엉뚱한 화면을 확인했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인 과학화경계시스템에서 경보가 울린 뒤 현장에 병력이 투입됐으나 월북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보고로 끝냈다. 부대 책임자는 상급 부대는 물론 직속 상관에게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 정상적인 사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상식적인 일이 또 벌어졌다.
대응 방식도 예상했던 대로다. 합참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절치부심의 자세로 대비태세를 확고히 한다고 다짐했다. 보완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조만간 대대적인 징계 인사가 있을 것이고, 장비 현대화를 위한 예산을 달라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뻔한 사과와 다짐을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명예가 목숨보다 소중한 군의 사과와 다짐이 조롱을 받는다.
군은 먼저 무엇이 잘못됐는지 근본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휴전선 250㎞에 철책을 치고, 고지마다 세운 초소에서 병사들이 밤새 지키는 선형방어(linear defense)는 더 이상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군은 여전히 철통같은 경계 태세만 외치고 있다. 인구 절벽에 따른 현역병 부족에 대비한 과학화경계시스템은 프로그램 오류, 고장, 오작동이 매년 2000건 가까이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 방향조차 못 잡고 있다. 대신 문제가 발생하면 일선 장병에게 책임을 묻고, 군기 부족을 탓한다. 수시로 오작동하는 장비를 사용하는 일선에서는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생각하는데 강력한 징계가 무슨 소용인가. 군 수뇌부가 진정으로 송구하다면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대책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