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세계의 관심사는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 미국 정권의 향배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불복으로 극성 지지자들이 의회까지 난입하는 바람에 미국 수도 워싱턴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유혈사태를 목도해야 했다. 그만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등장은 미국은 물론 국제정치와 세계경제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올해도 미국은 정국 향배를 결정할 중요 선거를 앞두고 있다. 바로 11월 8일 치러지는 연방 의회 중간선거다.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올해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한국 포르투갈 등 세계 14개국에서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면서 “2022년은 ‘선거의 해’”라고 보도했다. 미 연방 의회 중간선거까지 합치면 올해 전 세계에선 총 15개의 선거가 실시된다.
가장 주목받는 선거는 역시 미국 중간선거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지는 선거는 향후 미국의 정책, 나아가선 국제질서마저 결정할 개연성이 높다.
현재 미 의회 의석은 하원 민주당 222석 대 공화당 211석, 상원 50석 대 50석이다. 민주당이 승리해 의회까지 장악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복지예산 확대 정책은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반면 공화당이 이긴다면 현 정부의 추진력은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 여전히 공화당을 지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더 커질 개연성도 충분해진다. 정치평론가들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곤경을 겪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가장 먼저 선거를 치르는 국가는 유럽의 포르투갈이다. 이달 30일 조기 총선이 예정돼 있다. 원래 2023년 예정됐던 총선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제출한 올해 예산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일정이 앞당겨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집권 사회당이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승패보다는 국정 교착 상황을 해소할 연정이 구성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2월에는 남미의 코스타리카와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각각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다. 코스타리카는 중남미에선 가장 안정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로, 카를로스 알바라도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좌파 시민행동당의 승리 여부가 관건이다. 최근 2년 동안 두 번이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말리에선 민정 이양에 반대하는 군부세력이 득세한 것으로 알려져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질지 불투명하다.
3월 9일엔 한국에서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예정돼 있다. FP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선두를 다투고 있다는 개괄적 내용을 전하면서 두 후보의 공약과 외교정책을 소개했다.
4월에는 프랑스 대선이 치러진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가 관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온건우파 대중운동연합 대 온건좌파 사회당이 번갈아 집권하던 프랑스 정치의 판도를 중도신당 앙마르슈(전진) 창당으로 뒤집었던 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 낮은 지지율에 허덕여왔다. 이번 대선에선 2017년 대선 때 각축을 벌였던 극우성향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 극우 정치평론가 에릭 제무르 등과 대결한다. 제무르는 외국인·무슬림 혐오 발언으로 두 차례나 유죄선고를 받았던 인물이고, 르펜은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장악했던 RN의 극우성향을 다소 완화시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정치인이다. 결선투표가 있어 마크롱 대 르펜, 제무르 중 1명의 대결로 압축될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도 4월 말이나 5월 초 총선을 치른다. 2010년부터 장기 집권해온 극우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또 집권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여당 피데스와 중도좌파 야당연합의 지지율이 거의 동률인 상황이다. 그러나 헝가리는 최근 유럽연합(EU)으로부터 “EU 소속 국가 가운데 가장 비민주적인 국가”라는 판정을 받아 오르반 총리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최장 3년마다 총선을 치르는 호주는 올해 5월 21일까지 차기 총선 투표를 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선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노동당에 밀리고 있다. 총리 직무 적합도를 묻는 항목에선 모리슨 총리가 야당대표 앤서니 알바네이지보다 낫다는 응답이 많다고 FP는 전했다.
5월 9일로 예정된 필리핀 대선에선 1989년 사망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해 당선 유력후보로 꼽힌다.
같은 달 29일 치러지는 콜롬비아 대선에는 무려 60여명이 출마해 차기 대통령을 놓고 다툴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7%가 이반 두케 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8월 9일에는 아프리카 케냐 총선이, 9월 11일에는 스웨덴 총선이 예정돼 있다. 스웨덴 총선은 지난해 11월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와 그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에 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스웨덴에선 총선 때마다 과도한 복지예산과 세금 문제를 둘러싸고 우파와 좌파가 정책 대결을 벌여왔다.
10월 2일에는 브라질 대선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총선이 열린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좌파 진영을 이끄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맞대결로 압축된다. 현재 지지율 조사에선 룰라 전 대통령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압도적인 격차로 앞서나가고 있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튀니지도 12월 17일 총선을 치른다. 튀니지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꼽히는 나라다.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 기능을 정지시켜 국정을 장악한 지 1년 반 만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사이에드 집권에 대한 튀니지 국민의 신임 여부가 관건이다. FP는 “사이에드 대통령은 대선에 앞서 7월 25일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온건 성향의 사이에드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튀니지만의 세속적 이슬람 민주정부를 지속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