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하(85)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회학자다. 영토주권의 상징으로 ‘독도’ 문제를 40년 넘게 연구해 왔다.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신 교수는 ‘민족’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또 코로나 팬데믹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사회 발전의 대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 5년의 가장 큰 성과로 ‘평화 정착’을 꼽은 그는 “다음 정부도 반드시 평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신 교수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로 사회가 시름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드물게 오는 인류 문명사의 큰 재앙이라고 본다. 중세에도 페스트가 와서 인구가 3분의 1로 줄고, 아주 큰 도시의 절반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때는 의학 발전이 더뎌서 거의 1세기 가까이 지속됐는데, 이제는 의학의 발전으로 그래도 2~3년 내에 수습될 것이라고 본다. 지난 2년간 겪은 고통이 너무 크다. 사회적 분열, 격차,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고통받는 사람도 너무 많이 생겼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팬데믹 이후의 사회를 위해 필요한 가치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조건을 갖추더라도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경쟁 체제다. 이윤을 얻기 위한 체제여서 생산력을 높이는 데는 가장 역동적인 체제다. 하지만 이 체제는 자칫 잘못하면 윤리를 잃어버리기 쉽다. 아주 위험하다. 막스 베버는 이런 자본주의를 가리켜 ‘파리아 캐피탈리즘(천민자본주의)’이라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에는 끊임없이 윤리를 불어넣어줘야 한다.”
-지난해 비트코인·주식·부동산 등 자산 거품으로 어지러웠다.
“그것이 바로 파리아 캐피탈리즘의 전조 현상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려고 하고, 투기를 하고, 성에 안 차면 사기를 치면서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국가와 사회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사회에 윤리를 불어넣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과 종교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종교가 윤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와 종교가 역할을 하면 도덕은 유지될 수 있다. 윤리가 결합된 자본주의로 가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회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는 어떻게 평가될까.
“지난 5년간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바로 평화가 정착됐다는 점이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동족상잔의 참혹한 폐해를 입었는데 아직까지 아픔이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동족 간 전쟁은 안 된다. 지난 5년은 그 ‘첫걸음’을 뗀 시간이었다. 전쟁을 안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아야 한다. 다음 정부도 반드시 평화를 지속해야 한다. 나머지는 따로 평가하지 않겠다(웃음).”
-남북 관계도 답보상태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분단 상태지만 전쟁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북한도 남쪽을 따라 같이 성장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통일이 반드시 되리라고 본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지고 오랫동안 같은 민족으로 살아왔으니깐. 대신 통일을 구실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 분단 상황이 어려운 처지이긴 하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면 불우한 환경도 발전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통일은 자유와 민주주의, 복지가 있는 영세 무장중립국의 방향으로 될 것이라고 본다. ‘동양의 스위스’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둘러 국가의 존엄성을 훼손하면서까지 굽혀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 양국의 관계가 좋으면 좋겠지만 그건 일본이 움직여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일시적인 타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면 결과적으로 더 튼튼한 경제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 정신은.
“이번 대선에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강력한 리더십의 시대가 아니라 국민의 눈치를 봐서 표를 얻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면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운 정부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된다. 전문가들을 모아 국가 발전과 사회 발전에 대한 대설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그것을 안 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정책 설계는 안 하고, 서로 상대방 가족 비판만 하는 선거를 하지 않나.”
-국가 발전을 위한 설계는 무엇인가.
“최선진국을 향한 국가적 미래 설계다. 지금까지 아무런 설계 없이 해왔다. 문제가 터지면 그것을 틀어막는 데 급급했다. 젊은이들이 코로나19에 시달리며 점차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잃고 있다.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큰 희망과 포부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5년 단위씩 내다보는 거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202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3만2000달러)은 이탈리아를 따라잡았다. 향후 5년간 3만 달러 중후반 국가인 일본 영국 프랑스를 따라잡고, 그다음 5년에는 4만 달러 중반인 독일까지 따라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과학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명’에 관심을 갖도록 국가 차원의 대회를 열고 다양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코로나19 뒷수습에 대한 설계가 미래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신용하 교수는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회학자다. 1965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민족문제 연구에 몰두했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해 ‘독도 지킴이’로 잘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사연구소 초대 소장, 독도학회 회장, 백범학술원 초대원장 등을 지내며 일제하 독립운동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화여대, 한양대, 울산대 석좌교수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독립협회 연구’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등이 있다.
김판 신용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