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경계태세를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린 이번 월북 사건은 의문점 투성이다. 월북자가 철책을 넘은 1일 오후 6시40분부터 월북이 최종 확인된 오후 10시40분까지 수차례 제지할 기회가 있었지만 우리 군은 모두 놓쳤다.
우선 월북자의 신원 파악부터 난항이다. 군 당국은 2일 오전까지 성별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22사단 병력에 이상이 없어 일단 군인보다 민간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해가 진 뒤 철책을 넘어 이동한 것을 보면 해당 지역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일 수 있다. 2009년에는 22사단에서 전역한 민간인이 철책을 뚫고 월북하기도 했다.
탈북자가 재입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월북 이후 북측에선 미상 인원 4명이 식별됐다. 월북자의 생사 여부는 아직 모르지만 총살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나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책을 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는데 이에 대응하지 않은 이유도 의문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현장 움직임을 알리는 군용 CCTV 팝업창이 떴고, 철책에 설치된 광망(철조망 감시센서) 경보도 정상 작동됐다.
이 때문에 “CCTV 감시병이 포착 당시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합참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망 경보가 울려 현장에 나간 초동조치 병력이 ‘이상이 없다’고 보고하고 철수한 것 또한 안이한 대처로 지적된다.
군이 오후 9시20분 열상감시장비(TOD)로 비무장지대(DMZ)에 있던 월북자를 처음 인지한 뒤의 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북자는 1시간20분 뒤인 오후 10시40분쯤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군이 상황 인지 후 병력을 투입해 신병 확보 작전을 폈지만 실패한 것을 두고 ‘보존GP(감시초소)’ 인근에서 사건이 발생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존GP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키고 경계감시장비만 설치해 놓은 곳이다. 이전처럼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면 즉각 대응이 가능해 월북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