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1000억원에 육박하는 계약 총액만큼 관심을 끈 것이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이적이다. 각 소속팀에서 상징적 역할을 해온 스타들이 대거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팬들은 오랜 기간 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준 선수들의 이적에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작은 박해민이었다. LG 트윈스는 지난달 14일 4년 총액 60억원에 박해민과 계약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박해민은 2012년부터 10년간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뛰었고, 올 시즌엔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삼성에 남을 것으로 보였던 박해민의 LG행은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같은 날 오후엔 박건우의 NC 다이노스 이적 소식이 전해졌다. 2009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박건우는 2010년대 중반부터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NC는 중심타자인 나성범을 놓쳤다. NC는 “나성범을 무조건 잡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KIA 타이거즈를 감당하지 못했다. 2012년 NC에 입단해 9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12 212홈런 830타점을 기록한 나성범은 FA시장 역대 최고액인 150억원(6년)에 고향 팀 유니폼을 입었다. 나성범이 떠난 다음 날 NC는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손아섭과 4년 총액 64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부산고를 졸업한 손아섭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전체 29순위)로 롯데에 입단해 15년간 롯데에서만 뛰었다.
최근엔 박병호가 키움 히어로즈를 떠나 KT 위즈에 합류했다. 박병호는 보상금이 22억5000만원에 달해 이적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유한준이 은퇴한 KT가 중심타선 보강을 위해 영입을 결정했다. 키움은 2011년 넥센(현 키움)으로 이적한 뒤 홈런왕으로 성장해 팀을 8번이나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끈 박병호를 놓쳤다.
정든 팀을 떠나 유니폼을 갈아입은 선수들은 팬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박병호 나성범 박건우 등은 팬들에게 손편지를 남겼다. 박병호는 “긴 시간 동안 야구 선수로 성장하고 꿈을 이루어 나가는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응원해 준 히어로즈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손아섭은 지역신문에 지면 광고를 실어 “보내주신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놓친 구단의 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성명을 내거나 트럭시위까지 한다. 일부 두산 팬은 “사람이 미래라면 베어스에 미래는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양의지(NC) 김현수(LG) 오재일(삼성) 등 매년 FA 시장 출혈이 생긴 것을 꼬집은 것이다. 키움 팬들은 박병호 이적에 항의하는 트럭시위를 했다. 이 트럭엔 ‘박병호 없는 히어로즈 의미 없다’ 등의 문구가 게시됐다.
이번 시장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적이 대거 이뤄진 데는 역대급 시장 분위기가 한몫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과열된 시장이 영향을 줬다고 본다”고 했다. 기존 구단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입지와 기량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금액을 제시하는데, 다른 구단이 이를 훨씬 웃도는 제안을 내놨다고 한다. 팬들 입장에선 구단의 의지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과거 FA 계약 실패 등을 경험한 구단들은 마냥 머니게임에 동참할 순 없다고 강변한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