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대표적인 복지제도다. 소득이 일정 기준에 미달한 빈곤층을 대상으로 국가가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 기초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현금 또는 현물을 지원한다. 지난해 기준 약 233만명이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소득, 재산 등이 기준에 부합하는데도 수급 자격이 없는 빈곤층이 적지 않다. 직계혈족(부모, 자녀)과 그 배우자(며느리, 사위) 등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인데,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제외한 때문이다. 부양 책임을 국가에 떠넘기는 도덕적 해이를 막자는 취지지만 이 제도가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모로 봐도 극빈곤층인데 부양할 능력이 없어도, 능력은 있지만 회피하거나 관계를 끊었어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게 타당할까.
국가는 부양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고 있지만 가족 구조와 인식의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부양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응답이 1988년엔 89.9%였으나 2016년에는 30.6%로 떨어지는 등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 돌봄 체계가 작동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일 기초생활보호 대상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때 공약했으나 지난 10월에야 생계급여만 단서를 달아 폐지하고 의료급여는 그대로 둬 ‘반쪽짜리’에 그쳤다. 안 후보는 관련 재정을 연간 3조~5조원(중위소득 40% 이하 기준)으로 추산했다. 적지 않은 예산이다. 가족 간 유대 약화나 재산 사전 증여 등의 꼼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절대 빈곤층 부양 의무를 가족에게 미루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는 시대를 여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의 완성도를 높이고 복지국가로 더 나아가는 길이다. 여야 다른 유력 후보들도 관심을 가져, 대선 결과가 어찌 되든 다음 정부에서는 완전 폐지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