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취침 전 특별한 증상 없어
얕게 자고 꿈꾸는 '렘수면' 중 위험
절반 가까이 오전 5∼9시에 발견
병원 이송 늦어져 치료 제때 못해
겨울철 발생 많아… '작은 신호' 체크
두통·어지럼증·호흡불안정 등 살펴야
얕게 자고 꿈꾸는 '렘수면' 중 위험
절반 가까이 오전 5∼9시에 발견
병원 이송 늦어져 치료 제때 못해
겨울철 발생 많아… '작은 신호' 체크
두통·어지럼증·호흡불안정 등 살펴야
67세 여성 A씨는 저녁 7시쯤 식사한 후 ‘몸이 안 좋아 일찍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는 가족들이 기억하는 건강한 A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보통 오전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A씨는 7시가 넘도록 기척이 없었다. 가족들이 방으로 들어가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온 상태로 침대 옆에 쓰러진 A씨를 발견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시행한 CT와 MRI검사 결과를 보니 이미 왼쪽 대뇌에 뇌경색이 광범위하게 진행돼 혈전(피떡)을 녹이는 약물 투여가 가능한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친 후였다. 의사는 “왼쪽 대뇌의 3분의 2가 죽은 상태였다. 혈전 용해제로 막힌 뇌혈관을 뚫어봐야 소용없는 단계였다”며 “그 정도면 증상 발생 후 이미 6~8시간이 지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심한 마비와 언어·인지장애 등 후유증을 겪게 됐다.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터지는 뇌출혈을 통칭하는 뇌졸중은 국내 사망 원인 4위 질환으로, 지난해 59만2193명이 발생했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에 발생이 잦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올라가고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혈관이 막히거나 터질 위험성이 높아진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0~2019년 뇌혈관질환 사망자는 1월이 평균 231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일주기 리듬, 밤∼새벽 심하게 변화
갑자기 찾아오는 급성 뇌졸중은 무엇보다 골든타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 발현 후 3시간, 늦어도 4시간 30분 안에는 병원에 도착해 혈전용해 약물 투여 등 치료에 들어가야 목숨을 구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A씨처럼 잠자는 동안 뇌졸중이 발생해 아침에 뒤늦게 발견되는 사례가 많고, 그럴 경우 치료의 골든타임을 지키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최근 내놓은 급성 뇌졸중 평가자료(2020년 10월~2021년 3월)를 보면 증상 발현 시각을 알 수 없는 7824명 가운데 오전 5~9시 발견이 전체의 46.1%를 차지해 다른 시간대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강동경희대병원 신경외과 신희섭 교수는 3일 “실제 현장에서도 아침에 발견돼 응급실로 실려오는 급성 뇌졸중 환자들을 많이 본다”면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후 본인이 팔다리·얼굴 마비, 언어 이상 등 신경학적 증상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마비나 의식저하로 쓰러져 있는 걸 가족들이 발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아침 기상 시 발견되는 뇌졸중을 의학계에선 ‘웨이크업 스트로크(wake-up stroke)’라고 한다. 이 용어에는 밤 사이 뇌졸중이 언제 발생했는지 불분명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전체 뇌졸중의 4분의 1이 이런 웨이크업 스트로크에 해당된다. 또 하루 중 뇌졸중이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전 6시~낮 12시 47%, 자정~오전 6시가 24%로 주로 이른 새벽에서 늦은 오전 사이다.
이처럼 밤과 아침 사이에 뇌졸중 발생이 많은 것은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과 ‘수면 주기(sleep-wake cycle)’와 관련있다. 일주기 리듬은 24시간을 주기로 변화되는 우리 몸의 생리적, 행동학적 흐름을 말하며 체온이나 수면, 각성, 여러가지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신 교수는 “일주기 리듬의 변화가 밤과 새벽 사이에 심하게 발생해 혈압 상승, 갑작스러운 심장 부정맥 발현, 혈소판 응집 및 응고인자 기능 증가로 인한 혈전 생성 위험 상승, 혈액 점도 증가 및 혈관 내벽 기능 저하 같은 생체 변화가 갑자기 생길 수 있다”면서 “이런 변화들은 동맥경화와 혈관 협착 같은 기저질환이 있던 혈관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또 수면은 얕게 자고 꿈꾸는 ‘렘수면’과 깊게 잠드는 ‘비렘 수면’ 단계가 반복되는데, 렘수면 시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변동으로 자율신경계가 불안정해져 혈압과 호흡 수, 심장박동의 갑작스러운 증가로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혈관에 불안정성을 높여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 렘수면은 수면의 후반부인 새벽과 이른 아침에 많아지기 때문에 뇌졸중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더 주의해야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오전 5~9시 뇌졸중이 발견된 환자들의 70.4%는 잠들기 전 저녁 7시에서 자정 사이에는 정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상 시간에 발견한 환자 10명 중 7명은 잠들기 전에는 특별한 의심 증상이 없었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급성 뇌졸중은 전조 증상이 드러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다만 발생 전에 환자들이 애매모호한 표현을 할 수 있다”면서 “밥을 먹은 후 체한 것 같다거나 피곤해서 빨리 자야겠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어지럽다고 하면 가족들이 각별히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에 뇌졸중 발생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도 자다가 호흡이 불안정하고 거칠어지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쿵하고 쓰러지는 소리나 신음 소리가 날 수 있다. 평소 기상 시간이 지났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면 꼭 확인해 봐야 한다. 간혹 피곤해서 코를 골고 자는 줄 알았다면서 발견된 시각보다 2~3시간 더 지체돼서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다.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은 특히 뇌졸중 발생에 유의해야 한다. 수면무호흡증은 잠자는 중 최소 10초 이상 호흡이 멈추는 질환이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수면 중 불규칙한 호흡이 반복되면 뇌 산소 공급을 방해하고 혈중 산소 포화도를 떨어뜨려 뇌졸중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가벼운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뇌졸중 위험이 2배, 중등도 이상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경우 3배 이상 높았다”고 말했다.
골든타임을 지키려면 자가용이나 택시보다는 119구급차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시간 골든타임 내 병원 도착 환자들 대상 심평원 조사에서 55.2%가 구급차를 이용해 구급차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24.1%)보다 훨씬 높았다.
급성 뇌졸중은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신속히 옮겨야 하는데, 구급차는 해당 의료기관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이송 도중 기도가 막히거나 의식을 잃는 응급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뇌졸중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져 빨리 병원에 오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청심환을 먹거나 손을 딴다든지 하는 민간요법을 시행하거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약물을 복용하고 심지어 고령층의 경우 한숨 자고 나면 좋아질 거라며 시간을 지체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뇌혈관은 막히는 순간부터 뇌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범위가 넓어진다. 뇌는 한번 손상 받으면 다시 회복되기 힘든 만큼 아무리 작은 증상이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