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침묵

입력 2021-12-30 20:41

인간은 침묵에서 언어로 옮겨졌다
침묵의 집에 살다가
언어의 집에 산다
언어의 집에 산다는 것이
언어다운 집에 산다는 것은 아니다
침묵 지나
침묵 너머로 가려는 사람들
언어 지나
침묵 속에 산다
자연은 침묵 속에 있다
강아지도 강아지풀도 침묵 속에 있다
침묵 속에는
강아지의 언어와 강아지풀의 언어가 있다
언어 속에도 침묵이 있다
침묵의 언어는 우주에 펼쳐 있다
침묵은 미(美)처럼 펼쳐 있다

-임선기 시집 ‘피아노로 가는 눈밭’ 중

침묵과 언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인간은 ‘언어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언어다운 집’에 사는 건 아닐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럼 ‘언어다운 집’이란 게 무엇일까. ‘언어 지나/ 침묵 속에 산다’는 말이 나온다. ‘언어 속에도 침묵이 있다’는 문장도 이어진다. 언어가 언어다운 언어가 되려면 침묵이라는 언어를 새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