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친환경 에너지’서 뺀 정부… 수출 타격 불가피

입력 2021-12-31 00:06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 전경. 국민일보DB

정부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Taxonomy)에서 원자력발전을 최종 제외하기로 했다. 한국은 친환경 에너지 영역에서 원전을 공식적으로 제외한 세계 첫 번째 국가가 됐다. 향후 해외 원전 수주사업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환경부는 30일 녹색경제 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담은 ‘K택소노미 지침서’를 확정해 발표했다. K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경제활동을 구분하고 녹색채권·녹색기금 등 각종 금융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위장 환경주의’를 솎아내는 역할도 한다.

환경부는 K택소노미를 녹색·전환 부문으로 구분해 69개의 세부 경제활동을 확정했다. 녹색 부문에는 태양광·태양열 등 재생에너지 생산, 전기·수소차 등 무공해 차량 제조 활동을 담았다. 전환 부문에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블루수소 제조 활동을 포함했는데, 일단 2030년까지만 녹색분류체계로 인정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국민적 관심이 컸던 원전은 K택소노미에서 제외됐다. 환경부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NDC) 등을 고려해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인정하면 문재인정부가 추진해 온 탈원전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이번 결정으로 해외 원전 수주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업계가 체코 폴란드 이집트 등에서 원전 수출에 총력을 쏟는 상황에서 금융권을 통한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 수주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수원은 정부에 “원전은 전주기(全週期) 탄소배출이 매우 적은 초저탄소 전원”이라며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전 배제’ 결정이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K택소노미 지침서를 만들면서 유럽연합(EU)·국제표준화기구(ISO) 등 국제기준을 적극 참고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세계에서 택소노미에 원전을 배제하기로 결정한 나라는 없다. 한국이 1호 국가가 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간 의견 충돌을 감안해 원전 포함 결정을 내년 1~2월로 미룬 상태이고, 프랑스와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는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추후 EU 결정에 따라 K택소노미에 원전이 추가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EU의 원전 포함 여부가 결정되면 구체적 내용과 사유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겠다”며 “현재는 K택소노미에 원전이 빠졌지만 향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