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가 뜨겁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공약을 내놓거나 찬성 발언을 하면서 불이 붙었다. 찬성 쪽에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경제단체는 거세게 반대한다. 대결적 노사 관계에서 경영권을 흔든다고 우려한다. 노동이사제는 ‘약’과 ‘독’ 사이, 어디쯤에 서 있을까.
노동이사제란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경영참여제의 하나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제도다. 주주 외 이해관계자 이익보호, 효과적 감시자 및 조언자 역할 수행, 정보 교환, 인적자본 투자 증진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단기 성과를 추구하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기업이 사회적 공헌에도 무게를 두도록 유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은 2016년 국내 최초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현재 전국 10개 광역시·도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82개 투자·출연 공공기관이 운영 중이다. 부천시의 경우 정원 50명 이상 기관에서, 다른 지역은 정원 100명 이상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노동이사제를 운영토록 한다.
찬성하는 쪽에선 기업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제도가 실질적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문재인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채택했었다. 정부는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적 가치 실현의 수단으로 노동이사제를 바라본다. 국회에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은 상임이사 중 노동이사 2인 이상을, 근로자 정원 500명 미만인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우 노동이사 1인 이상을 포함해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경영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서울시 16개 기관의 이사 49명을 설문한 결과 경영 투명성, 공익성,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 등에서 긍정적 변화가 있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의사결정이 지연돼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34명(69.4%)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재계 왜 반대하나
그러나 재계는 이사회가 노사교섭과 갈등의 현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힘의 균형추가 노동자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점, 이사회 의사결정 지연·방해 가능성, 노사의 담합 우려, 노동이사의 경영 전문성 미흡 등도 우려한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산하면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본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은 지난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지난 20일 국회를 방문해 “효율적 의사결정의 지연, 정보 유출 등 많은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재계는 한국의 기업·경영 환경에 적절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경총이 지난달 전국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0명을 설문한 결과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에 적용될 경우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이 61.5%에 달했다. 경총은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에 따른 노조로의 ‘힘의 쏠림’ 현상이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더 커질 수 있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라고 풀이했다.
노동이사제를 규제하면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찌감치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독일에서도 이를 피하기 위해 상당수 기업이 해외법인을 설립하거나 법인 형태를 공익재단으로 바꾸고 있다. 노동이사제가 기업 투자에 불리한 조건이 되고 있다”면서 “새로운 규제를 하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갈 명분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노동자 경영참여 길 열려있어”
전문가들은 우리 현실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크게 일원화 모델(one-tier)과 이원화 모델(two-tier)로 나뉜다.
이원화 모델은 이사회를 감독하는 감독회가 이사회와 병존하는 구조다. 독일과 동유럽 국가에서 채택한 모델이다. 감독회는 이사회 통제권, 이사회 이사 임명권을 갖는다.
유럽의 노동이사는 이사회가 아닌 감독회에 주로 참여한다. 독일에선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의 경우 업무집행은 이사회, 업무감독은 감사회가 맡는다. 감사회에 노동자 측 인사가 참여한다.
이와 달리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선 일원화 모델이 주류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이사회가 단독으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들어가면 의사결정에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교수는 “독일과 달리 기업별 노조가 있어 매년 단체교섭을 하는 등 노동자들이 경영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노동이사제를 법으로 강제할 게 아니라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