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고 자랐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비에 대한 시를 읽고 느낌을 얘기할 때, “저는 이 비가 소말리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는 굶어죽는 사람이 많으니까 물배라도 채워야 되지 않겠어요?” 하여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유명한 작가를 꿈꾸며 책도 많이 읽었고,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문예 창작과를 가지 못하고 시나리오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기대했던 시나리오 대회에서 탈락하며 새롭고 폭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러시아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러시아어 공부는 너무 힘들었다. 즐겨야 할 대학생활을 러시아어 발음이 안 된다며 교수들께 꾸중만 들으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피자가게 사장님 부부가 예수님을 믿으며 항상 기쁘게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한마음교회에 갔다. 대학생수련회에 참가했는데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믿을 수 없는 말씀만 수없이 들었다. 너무 궁금하여 역사 서적들과 위인전, 인터넷을 찾기 시작했다. 4대 성인 중 예수님만 부활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나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았다. 그러다 교환학생으로 러시아에 갔다. 거기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생가와 작품 세계를 자세히 보고 다시 작가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불탔다. 교환학생을 마치자마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유럽 5개국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만 커졌다. ‘그래. 기막힌 작품 하나를 써서 한 방에 세상에서 유명해져야지!’ 세상에 뭔가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돌아왔는데 목사님은 ‘세상은 배설물’이라고 하셨다. 마음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빨리 오라는 급한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한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가장 마음 아파야 할 어머니는 이상하게 담대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니 걱정하지 말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나가자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강의 중에도 계속 죽음이 생각나고, ‘자살’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밤에는 심한 가위눌림과 악몽에 시달렸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힘들어 할 때, 나를 제자 양육하던 언니의 권유로 교회기숙사에 들어갔다. 언니들과 지체들의 사랑의 교제와 기도로, 슬픔도 가위 눌림도 악몽도 사라졌지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지워지지 않았다. 목사님의 말씀도 ‘부활하신 것? 나도 다 아는데...’ 하며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2장 22절에서 3년 반 동안 함께 생활한 제자들이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씀을 하시는 순간, 그동안 나는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알고만 있었다는 사실이 선명히 비춰졌다. 지식에만 머물렀던 예수님의 부활이 드디어 내게 실제가 되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9절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 앞에 바로 굴복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니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뜨겁게 가슴에 전해졌다. 그 사랑 앞에 유명작가의 꿈을 바로 내려놓고 ‘내 양을 먹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중·고등부교사로 자원하여 고등학생 2명을 맡아 양육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어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날이 있으리란 생각에 힘들었던 공부가 다시 즐거워졌고, 따기 어려운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리고 늘 풀리지 않는 신앙적 갈등으로 갈급해 하던 후배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도 일어났다.
그 후, 하나님께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방송작가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의뢰한 지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방송작가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형제를 만나 결혼도 했다. 결혼을 한 지 3년이 지나도 아기를 주시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난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마음이 힘들었지만 분명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으리라 믿으며 낙심하지 않고 잠시 쉬겠다며 정든 방송국을 퇴사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놀라운 선물을 준비해 두셨다. 퇴사한 바로 다음 날 산부인과 의사도 놀란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고, 방송작가 생활, 난임이라는 충격적인 소식 등 힘든 일에도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아이를 사명자로 기르면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정은혜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