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랑의 열매

입력 2021-12-31 04:10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 산에서는 작고 빨간 열매를 쉽게 볼 수 있다. 먼 곳까지 씨를 퍼뜨리는 새들에게 주는 나무의 선물이다. 등산객들은 산수유니, 팥배나무니, 산사나무니 근거 없는 말을 하며 지나간다. 즐거운 산행 길에 낯선 열매 이름이야 몰라도 그만이다. 그래도 연말연시 사람들 가슴에 달린 빨간 열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바로 사랑의 열매다.

사랑의 열매가 처음 등장한 건 1966년이다. 그해 5월 재해대책전국협의회는 빨간 열매 3개로 구성된 배지를 만들어 육영수 여사에게 선물했다. 육 여사가 주도했던 모임 양지회에서 사용해 널리 알려달라는 취지였다. 이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단 육 여사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이후 육 여사는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기금을 모으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거리에서 사랑의 열매를 시민들의 옷깃에 달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육 여사가 숨진 뒤 이 운동은 시들해졌다. 80년대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반강제적 모금 운동 때문에 오해를 사면서 외면을 당했다.

그랬던 사랑의 열매가 90년대 초 민간 주도 모금 운동과 함께 되살아났다. 98년 설립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아예 상징으로 삼았다. 의미도 새로 정리했다. 열매 3개는 나, 가족, 이웃이라고 한다. 따뜻한 마음을 뜻하는 빨간색 열매를 초록색 가지에 하나로 모아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뜻을 담았다. 산림청이 백당나무를 사랑의 열매와 가장 닮았다고 소개한 뒤 서울 광화문 공동모금회 건물 앞에는 이 나무가 예쁘게 자라고 있다.

공동모금회의 올해 모금 목표액은 3700억원이다. 1%인 37억원이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올라 목표를 달성하면 100도가 되는 사랑의 온도탑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서있다. 30일 현재 83.2도다. 코로나19 한파에 예년에 비해 온도가 느리게 오른다고 한다. 그래도 온정이 준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개인기부자는 97만2000여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올해도 이 기록은 무난히 깨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따뜻한 소식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